철거민의 구원(상)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08-02-27 18:30     조회 : 11606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에서 고정필자로 "성경과 역사의 땅"(제목을 "희년 경제 이야기"로 바꿀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이라는 코너에 글을 매주 한번씩 기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집장님이 처음부터 제게 용어를 모두 가톨릭의 용어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을 하셔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개신교 기독교인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철거민의 구원(상)


‘구원’이란 무엇인가?

대천덕 신부에 의하면, 구원이란 바로 “문제 해결”이다. 성서는 “전쟁 문제 해결”, “병 문제 해결”, “경제 문제 해결” 등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모두 구원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하느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느님이시며, ‘구주’라는 말은 ‘문제 해결하시는 주님’이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은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시는 분이시다.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인 김세윤 교수도 『구원이란 무엇인가?』(두란노)에서, 대천덕 신부와 비슷한 구원 개념을 피력한다. 김세윤 교수에 의하면, 구원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총체적”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구원은 우리의 실존 전체에 대한 구원”이다. 김교수에 의하면, “그것이 우리 육신과는 소용없고 영혼에만 소용 있는 구원도 아니고, 그것이 이 세상은 관계없고 내세에만 관계되는 구원도 아닙니다.” 그는 구원을 이 세상과 육신적 삶으로만 축약시키는 태도도 경계하고, 이 세상과 육신적 삶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도 경계하면서, “실존 전체에 대한 구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특히 구원과 빈곤에 대해 인상적인 주장을 편다. “빈곤도 엄연한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빈곤과 관계없다면 그것이 무슨 구원이겠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으로도 나타난다. 김세윤 교수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 세상의 몇 가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들에 축약시켜서는 안 된다고 전제를 달면서 총체적 구원을 강조한다. “이 세상에서의 정치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 경제적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등 이런 것들도 다 그리스도의 총체적 구원의 구체적 반영으로서 절실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철거민의 사례를 들어 구원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10년 전 행당동 철거민 마을에서

필자가 철거민을 처음으로 직접 만난 것은 1997년 12월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다. 성탄절이 가까운 어느 날, 필자가 몸담았던 ‘새벽이슬’이라는 그리스도교학생모임에서 기도회가 있었다. “성탄절을 맞아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를 논의하며 기도했다. 한 자매가 TV에서 본 서울 행당동 철거민 마을을 이야기했다. 충격적인 강제철거 과정이 방송된 마을이었다.

처음 찾아갔을 때 그리스도교인인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 분은 예배를 못 드린 지 오래되었다고 하시며, 정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언제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울타리 밖 교회로 나갈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때부터 약 6개월간 마을의 집회장소로 쓰이던 군용 천막 안에서 일요일마다 저녁 예배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드리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철거민 마을을 방문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 시간 전쯤 철거용역소장이 왔다. 추기경과 언론사 기자들의 방문이 어지간히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소장을 보자 한 할머니가 거칠게 가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소장이 천막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밀어내려 하였다. 그 와중에 소장이 발길로 어머니뻘 되는 그 할머니를 거의 이단 옆차기로 걷어찼고 할머니는 나뒹굴었다. 소장이 큰 소리로 주민들을 협박하고 돌아간 다음, 한 분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소장이 일전에 와서 철거민들을 협박하면서 사용한 사시미 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철거용역회사가 바로 당시에 철거로 가장 악명이 높았던 ‘적준’이었다. 철거반에게 두들겨 맞아 마을 아저씨들은 대부분 갈비뼈 하나씩은 부러져 있었고,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몸이 성한 분이 없었다.

연세가 80세 정도 되신, 그 마을에서 가장 연로하신 할머니가 계셨는데 믿음이 깊은 분이셨다. 그 아드님이 철거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이셨고, 연세가 60세 가까이 되셨다. 할머니가 우리를 좋아하셔서 비닐집으로 몇 번 찾아뵈었는데, 아드님이 교회를 안다닌다고 걱정하시곤 하셨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비닐 집안으로 외풍이 너무 심해서 어떻게 할머니가 이런 곳에서 견디실까 걱정스러웠다. 건강을 여쭈어 보았더니, 외풍 때문에 추워서 온 몸이 아프다고 하셨다. 아는 한의사 선배에게 한방진료를 토요일마다 해 줄 수 있는지 부탁드렸다. 그 선배는 기쁨으로 해 주었다. 마을 어르신들과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정말 기뻐하셨다. 그 선배는 진료를 해 드리며 간간이 예수님을 전하였다.

두 번 정도 서울 동부 지법에 갔다. 법정에 선 위원장 아저씨와 판사와 재개발조합-건설회사 측 변호사를 보았다. 판사는 나이가 지긋하였는데 철거민의 처지를 동정하는 듯하였고, 양측에 원만한 합의를 주문하였다. 상대편 변호사는 무기력해 보였고 단지 돈을 받고 일하는 모습이었다. 주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생각했다. 판사가 앉은 자리에 주께서 좌정하실 것이요, 탐욕에 눈이 멀어 힘없는 이웃들을 내쫓는 데 가담한 자들은 모두 피고석에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

어느 주일 저녁, 어르신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몹시 경직되어 있었고 긴장하고 계셨다. 주민들이 가수용단지(임대아파트 입주권과 더불어 세입자 철거민의 핵심요구사항으로서,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 전에 아파트 공사기간 약 2-3년 동안 주민들이 지낼 수 있는 단지)를 요구하기 위해 세운 임시 천막을 허물기 위해, 다음날 철거용역반이 들이닥친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염려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남기로 결심했다. 예배 중에도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늦은 밤 홀로 천막에서 내일 피 흘리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기도하였다. 마을에는 천주교 도시빈민사목위원회로 기억되는데, 거기에서 파송한 수사 한 분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 수사님의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가수용단지 건설 촉구를 위해 세운 임시 천막 옆 공터에 모여 앉은 주민들 집회에 참석하였다. 철거용역소장이 철거반원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천막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갑자기 소장에게 달려들었다. 온 몸으로 소장과 충돌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전에 소장에게 발길질을 당한 그 할머니였다. 또 다른 아주머니들이 소장과 철거반에게 달려들었다. 그 중에는 참으로 선한 마음씨를 가진 그리스도교인 아주머니도 계셨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철거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참으로 유순한 눈빛으로 부드럽게 대화 나누던 분들이었는데, 철거반을 보자마자 눈빛이 말 그대로 적개심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며 온 몸을 던져서 육탄으로 돌진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눈빛과 모습에서 이 분들의 마음의 상처와 한이 얼마나 깊은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격렬한 저항에 소장과 철거반이 일시 후퇴하였다. 격렬한 저항이 자칫 유혈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묵도하고 발언 기회를 요청하여 주민들에게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나누었다. “우리가 미국 남부로 가져가려고 하는 운동은, 외부의 물리적 폭력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정신적 폭력, 곧 증오심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철거반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 드렸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등 뒤의 철거반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랐고,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면 그냥 맞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고민되었다. 마음 한편에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조금 지나 ‘그래. 저항하지 말고 주민들과 철거반의 가운데에서 그냥 맞아 버리자’ 하고 마음을 정했다. 마음속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소장이 조직부장 아저씨와 협상을 한 것이다. 소장과 철거반 역시 철거민들과 더 이상 충돌하고 싶지 않은데, 자기들을 고용한 재개발조합-건설회사가 가수용단지 천막을 눈에 가시처럼 여겨서 그것을 허물어 버리라고 명령을 내리니까, 일단 자기들이 천막을 조용히 쓰러뜨리고 사진을 찍어 갈 테니, 자기들이 간 다음에 바로 다시 천막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기들은 일단 명령대로 허물었는데, 나중에 주민들이 또 세운 것으로 하면 자기들도 재개발조합-건설회사에 할 말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그날 피를 흘리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던 내 마음을 아는 마을의 조직부장 아저씨로부터 이 세상이 얼마나 비정한지를 듣게 되었다. 이 분들이 철거민 문제 해결을 위해 언론사에 취재를 요청하면 기자들이 하는 말이, “피를 흘려야 보도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조직부장 아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우리는 죽고 싶지 않다. 피 흘리고 싶지 않고 다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기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점에서 피를 요구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어찌 기자들만의 비정함일까? 피가 흘려지기 전에는 가난한 이웃들의 울부짖음에 주목하지 않는, 나를 포함한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잔인함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예배드리던 군용 천막은 백열전구 하나가 있었고, 나무장작으로 불을 때는 난로가 한 가운데, 그리고 군대 내무반처럼 출입구 좌우로 높은 평상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 분들을 위해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하느님께서는 참으로 강하고 충만하게 임재하셨다. 많은 집회에 참석하였지만 이 천막에서처럼 성령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임하신 경험은 드물다. 하느님이 참으로 기뻐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때 성령 하느님이 임하시는 목적은 바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희년을 선포하기 위함이라는 말씀(루가4:18-19)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이와 같은 철거민에게 교회가 나타내야 할 그리스도의 구원은 무엇일까? 살던 집이 헐린 철거민에게 교회가 나타내야 할 그리스도의 구원은 따뜻한 보금자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철거반원들에게 보금자리가 무참히 헐리고, 강제 철거에 저항하다가 두들겨 맞고 모욕당하고 끌려가서 내동댕이쳐진 채 추운겨울에 비닐집에서 지내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상처받은 철거민에게 교회가 나타내야 할 그리스도의 구원은 상한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과 유혈사태가 예상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임하는 하느님의 주권적 기적의 은총이 바로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구원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유일한 구원자(문제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일 것이다.


박창수
한미FTA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며,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이고, '희년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다.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박창수 200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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