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묵상] 나사렛 메시아 선언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1-10 09:46     조회 : 918    
1. ‘주의 성령’과 ‘주의 은혜의 해’

예수님은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1-2의 메시아 본문을 찾아서 읽으신 후에 이 말씀이 응하였다(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나사렛 메시아 선언’ 본문(눅 4:16-21)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하시면서, 메시아의 핵심 사역으로 ‘주의 은혜의 해’를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주의 은혜의 해’는 안식년과 희년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희년을 가리킨다. 이 본문은 두 가지를 강조하는데, 바로 ‘주의 성령’과 ‘주의 은혜의 해’이다.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신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성령님이 예수님께, 그리고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임하시는 목적은 다름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년을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할 때, 그 목적이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나 내 교회만을 위한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령 충만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년을 선포하기 원하오니, 성령님,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본문에 담긴, 성령 충만을 구하는 기도의 중요한 목적이다.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나 내 교회만을 위해 성령 충만을 기도하는 ‘나를 위한 신앙’의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단계에 머무르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성령 충만을 기도하는 ‘이웃을 위한 신앙’의 성숙하고 이타적인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년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이 임하셔야 한다. 희년은 결코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희년을 가로막는 마귀의 역사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역사에서 사람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희년이 있다면, 그것은 희년처럼 보이는 ‘유사 희년’(pseudo-jubilee), 가짜 희년일 뿐,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희년’(the Jubilee), 진짜 희년은 아니다. 희년은 오직 성령님이 임하셔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는 때는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성령님의 충만을 간구해야 한다.

나사렛 메시아 선언 바로 앞의 본문들에 의하면,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다름 아닌 기도하실 때 성령님이 그 위에 강림하셨으며(3:21-22), 그렇게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고(4:1-13), 그 후에 비로소 성령님의 능력으로 갈릴리에서 사역하기 시작하셨는데(4:14-15), 그 사역의 내용이 바로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나사렛 메시아 선언 본문(4:16-21)에서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예수님도 먼저 기도하시고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신 후에 비로소 성령님의 능력으로 희년을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먼저 열흘 동안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님의 세례를 받기 위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고(행 1:1-14), 그 결과 오순절에 성령님의 충만을 받은 후에(행 2:1-3), 비로소 담대히 온 세상에 희년을 선포하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시작했고 유무상통의 희년 교회를 이루었다(행 2:14-47).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통점인 세 가지의 순서를 요약하면, ‘기도→성령 충만→희년 선포’이다.

2.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은혜의 해’

하워드 스나이더의 『하나님 나라의 모델』에 의하면,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이 하나님의 나라에는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이 신비는 성육신의 신비와 연관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긴장 관계에 있는 양극성이 신비로서 존재한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적이면서도 현재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며, 영적이면서도 물질적이고, 급진적이면서도 점진적이며, 하나님의 행위이면서도 인간의 행위이며, 교회이면서도 교회가 아니다. 양극 사이의 이러한 긴장을 희석시키면서, 한 측면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고 다른 측면을 완전히 제거하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그만큼 비성경적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선포하신 ‘주의 은혜의 해’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사 40:9-10, 52:7, 61:1-2). 따라서 ‘주의 은혜의 해’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 존재하는 양극성을 갖는다. 곧 ‘주의 은혜의 해’는 미래적이면서도 현재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며, 영적이면서도 물질적이고, 급진적이면서도 점진적이며, 하나님의 행위이면서도 인간의 행위이며, 교회이면서도 교회가 아니다.

3. 안식년과 희년

구약 이스라엘 역법(曆法)에서 제7일이 안식일, 제7년이 안식년, 그리고 제7안식년인 제49년 이듬해인 제50년이 바로 희년이다. 제7일인 안식일에는 모든 노동을 멈추고 안식해야 한다. 제7년인 안식년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토지를 안식하게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진 모든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 곧 안식년의 두 가지 규정은 토지 안식과 부채 탕감이다. 그리고 제50년인 희년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토지를 안식하게 해야 하고, 가난 때문에 토지와 주택과 자유를 잃고 가족을 떠난 사람들에게 그 토지와 주택과 자유와 가족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곧 희년의 다섯 가지 규정은 토지 안식과 토지 회복과 주택 회복과 자유 회복과 가족 회복이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은 큰 틀에서 ‘7’이라는 숫자를 주기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그 정신이 모두 안식과 자유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모두 아울러 안식일 관련법으로 통칭한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안식일 계명을 주해하면서 안식년과 희년도 함께 포함하여 주해한 것이다.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계명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안식년과 희년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이다.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안식일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그만큼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마땅하다. 안식일의 정신만 중시하고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은 무시한다면 성경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안식년과 희년에는 세 가지 관계가 회복된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땅과의 관계이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는 희년이 시작되는 속죄일에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회복된다. 다음으로 이웃과의 관계는 안식년에 가난한 이웃이 진 모든 부채를 탕감해 주고, 희년에 가난한 이웃에게 그가 잃어버린 토지와 주택과 자유와 가족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회복된다. 마지막으로 땅과의 관계는 안식년과 희년에 토지를 안식하게 함으로써 회복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세 가지 관계가 모두 깨진 후에 멸망했다. 이스라엘은 온갖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여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렸고, 탐욕 때문에 안식년과 희년에도 토지를 경작하여 토지의 안식을 가로막아 땅과의 관계를 깨뜨렸다. 이 세 가지 관계를 모두 깨뜨린 후에 이스라엘은 전쟁이 일어나 평화를 잃고 멸망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 자연과의 관계가 모두 깨어지고 있지 않는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섬기고 있고, 가난한 이웃들을 착취하고 있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가 바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그럼 이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희년 실천이다. 희년 실천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희년 실천이 바로 평화의 길인 것이다.

4. 희년 정신

희년 정신의 근본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땅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팔릴 수 없으며 사람은 하나님의 땅에 사는 거류민과 동거자에 불과하다는 사실(레 25:23),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사람의 종으로 팔릴 수 없다는 사실(레 25:42)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희년 정신의 근본임을 잘 나타낸다.

그리고 희년 정신의 정수는 대속(代贖) 정신 곧 십자가 정신이다. 가난 때문에 땅과 집과 자유와 가족을 잃은 가난한 친족을 위해, 자신이 대신 값을 치르고 그 가난한 친족의 땅과 집과 자유와 가족을 회복시켜주는 근족(近族)의 ‘대속’ 정신이다(레 25:24-25, 47-49).

그런데 근족의 대속 정신은 바로 ‘십자가’ 정신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으로 희년을 선포하셨다.

사 53:10-12에서 여호와의 종이 ‘그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속건제물’로 바치시는 것처럼, 막 10:45에서 ‘인자’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신다. 이사야 53장의 속건 제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인 ‘아샴’이 마가복음 10장에서는 대속물을 뜻하는 헬라어 ‘뤼트론’으로 바뀌었는데, ‘뤼트론’은 토지를 무르는 값, 사람을 속량하는 값(속전)에 사용되는 단어이다.

곧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속건제물로 바치셔서 우리의 죄를 속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셔서 우리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토지와 자유를 되찾아 주셨다. 그런데 토지와 자유를 되찾는 때는 바로 희년이며, 빚을 탕감 받는 때는 바로 안식년이다.

곧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자기 목숨을 ‘토지 무르는 값’과 ‘속량하는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가 잃어버린 ‘토지’(하나님 나라 기업)와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노릇으로부터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속해’(죄의 빚을 탕감해)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안식년’을 선포해 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안식년과 희년을 선포해 주신 것이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본받는 것이 바로 희년 정신의 정수인 것이다.

예수님 없이 희년은 없다. No Jesus, No Jubilee.
희생 없이 희년은 없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희생 없이 희년 교회와 희년 세상은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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