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와 안창호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1-23 23:32     조회 : 1054    

헨리 조지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재야의 신학자였다. 그의 토지 평등권 사상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그의 모든 저술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신앙인의 경건이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교황 레오 13세에게 보낸 공개서한인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김윤상 역, 2012; The Condition of Labor: An Open Letter to Pope Leo ⅩⅢ, 1891)󰡕를 살펴보자.

이 공개서한의 첫 장에서 그는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고 고백했다. 또 이 책에서 그는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토지를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이 희년(禧年, 제50년)에 그 토지를 되찾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토지 평등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성경의 토지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보여주었다.

“모세의 법은 “땅은 아주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는 선언과 함께 매 50년마다 토지를 되물리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 속에서, 그는 토지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토지사유제도는 인정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경의 그 어느 곳에도 노동 생산물에 대한 재산권과 같은 권리를 토지에 대해 인정하는 제도를 정당화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이라는 표현처럼 어디에서나 토지를 하느님의 대가 없는 하사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희년 토지법에 기초한 헨리 조지의 토지평등권 사상은 러시아의 톨스토이와 중국의 쑨원(孫文)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를 접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애 마지막 25년, 사반세기를 러시아에 헨리 조지의 대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쑨원은 신 중국의 건국철학으로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라는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주창하면서, 그 가운데 핵심인 민생주의에서 토지평등권을 역설했는데, 이는 헨리 조지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헨리 조지의 토지평등권 사상은 쑨원을 거쳐 안창호와 조소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으로 이어졌다. 이 글에서는 안창호에 주목해 보자.

안창호는 쑨원의 삼민주의를 비롯한 주요 세계 정치사상 가운데 장단점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대공주의(大公主義) 정치사상을 정립하고 이 대공주의에 기초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했다. 쑨원의 삼민주의 건국철학에 담긴 토지평등권 사상이 안창호의 대공주의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안창호의 비서였던 구익균은 안창호가 쑨원의 삼민주의를 주시했고 이 삼민주의를 중국과 같은 역사적 운명에 처한 한국혁명의 지도이념으로 보았다고 증언한다.
 
“안창호 선생의 정치사상은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그를 만난 1929년부터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홍구 공원 폭탄사건에 연루되어 국내로 붙잡혀간 1932년 4월까지를 잘라 말한다면 그가 제창한 대공주의(大公主義)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인용자)

이때 안창호 선생은 먼저 중국혁명의 지도자 손문(孫文) 선생의 삼민주의와 중국혁명의 국공합작노선을 주시해 보았다. 그는 민족, 민권, 민생의 삼대원칙이 반봉건 반제의 기치를 든 중국혁명노선이 될 뿐만 아니라 같은 역사적 운명에 처한 한국혁명의 지도이념임을 확인하고 있었다.”(구익균, “새 역사의 여명에 서서”, 시사뉴스피플 (2013년 9월 2일)).

그리고 안창호는 해방된 후에 경제 평등과 정치 평등과 교육 평등을 기본원칙으로 삼는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창호가 미국 동포 독립운동가에게 보낸 편지에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혁명이론, 혁명원칙에 있어서는, 1은 우리는 피압박 민족인 동시에 피압박 계급임으로 민족적 해방과 계급적 해방을 아울러 얻기 위하여 싸우자. 싸움의 대상물은 오직 일본제국주의임을 인식하여야 할 것, 2는 우리의 일체 압박을 해방하기 위하여 싸우는 수단은 대중의 소극적 반항운동과 특별한 조직으로 적극적 폭력 파괴를 중심으로 하여 선전 조직 훈련 등을 실행하며 실제 투쟁을 간단없이 할 것. 3에는 일본제국주의 압박에서 해방된 뒤에 신국가를 건설함에는 경제와 정치와 교육을 아울러 평등히 하는 기본 원칙으로써 민주주의 국가를 실현시킬 것. 4는 일보를 더 나아가 전 세계 인류에 대공주의를 실현할 것.”(안창호, “안창호가 홍언 동지에게 보낸 회람 요청 문건(1931.11.6.)”, 도산 안창호 전집 8 (서울: 중앙 M&B, 2000), 637; 박만규, “안창호의 대공주의에 관한 두 가지 쟁점”,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1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8), 194에서 재인용).

특히 “3에는 일본제국주의 압박에서 해방된 뒤에 신국가를 건설함에는 경제와 정치와 교육을 아울러 평등히 하는 기본 원칙으로써 민주주의 국가를 실현시킬 것”에서 “경제와 정치와 교육을 아울러 평등히 하는 기본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이 세 가지 평등 가운데 경제 평등이 가장 앞에 나오는 것은 안창호가 경제 평등을 가장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경제 평등이 바로 쑨원의 토지평등권 사상을 안창호가 취한 것이다.

안창호는 대공주의에 입각하여, 경제 평등과 정치 평등과 교육 평등을 주창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평등은 한국독립당의 사상이 되었다.

“김성숙은, ‘한국독립당이 창당될 때 삼민주의의 영향을 받은 안창호가 삼균주의를 들고 나왔고 안창호가 주창해서 삼균주의를 한국독립당의 사상으로 만들었는데, 후에 조소앙이 다시 이를 말하고 나왔다’고 회고하였다.”(김학준 편, 혁명가들의 항일회상 (1988), 60; 박만규, 2018, 205쪽 각주 40번에서 재인용).

요컨대 쑨원의 토지평등권 사상은 안창호에게 영향을 미쳐서 그가 주창한 경제 평등의 주요내용이 되었고, 안창호는 이 경제 평등에 정치 평등과 교육 평등을 더해 자신의 건국철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독립당의 사상이 되었고, 나아가 조소앙을 거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 되었다.

1941년 11월 28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제정하여 공포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三均) 제도의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우리 민족이 지킬 바 최고 공리”는 “지력(智力)과 권력(權力)과 부력(富力)의 향유를 균평(均平)하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유”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력(智力)과 권력(權力)과 부력(富力)의 향유를 균평(均平)하게 하는 것은 그 차례대로 교육 균등과 정치 균등과 경제 균등을 가리키며, 이 세 가지의 균등을 바로 삼균(三均)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이 삼균(三均) 철학에 의해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유하는 것을 우리 민족이 지켜야 할 최고 공리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 최고 공리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토지제도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바로 이어서 “우리나라의 토지제도는 국유(國有)에 유법(遣法)을 두었으니, 선현(先賢)의 통론(痛論)한 바 『준성조지공분수지법(遵聖祖至公分授之法)하여 혁후인사유겸병지폐(革後人私有兼倂之弊)』(거룩한 선조들이 지극히 공평하게 토지를 분배하고 수여해준 법을 따라, 뒷날의 사람들이 토지를 사유하고 겸병하는 폐단을 혁파한다)라 하였다. 이는 문란한 사유(私有) 제도를 국유(國有)로 환원(還元)하라는 토지혁명(土地革命)의 역사적 선언이다.”라고 천명했다. 여기서 대한민국 건국강령이 우리나라 토지제도의 유법(遣法), 곧 성조지공분수지법(聖祖至公分授之法, 거룩한 선조들이 지극히 공평하게 토지를 분배하고 수여해준 법)에 의거하여, 토지혁명(土地革命)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어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우리 민족은 고규(故規)와 신법(新法)을 참호(參互)하여 토지제도를 국유(國有)로 확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본질은, 단순히 토지 소유를 사유(私有)에서 국유(國有)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공분수(至公分授, 지극히 공평한 분배 수여)에 담긴 ‘모든 사람의 토지평등권 실현’ 원칙이라는 점이다. 토지평등권을 실현하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토지소유 관계를 사유로 하느냐 국유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중국이나 북한에서처럼 토지가 형식상으로는 국유(國有)이지만, 실제상으로는 소수 권력자들과 그 일가의 사유(私有)라면, 이는 지공분수(至公分授)에 담긴 토지평등권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 담긴 토지 국유의 본지는 토지 국유 자체가 아니라 토지평등권 실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사실은 이어지는 관련 조항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토지는 자력자경인(自力自經人)에게 분급(分給)함을 원칙(原則)으로 하되, 원래의 고용농(雇傭農) 자작농(自作農) 소지주농(小地主農) 중지주농(中地主農) 등 농인(農人) 지위를 보아 저급(低級)으로부터 우선권을 줌”을 선언했다. 농민 가운데 땅 한 평 없는 순수 고용농과 같이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는 농민부터 차례로 토지 분급의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토지평등권을 최대한 실현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 담긴 토지 철학의 본질은 토지 국유 원칙이 아니라 토지평등권 원칙이며, 우리는 이 토지평등권 원칙을 21세기 대한민국에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은 토지혁명을 위해 “고규(故規, 옛 법)와 신법(新法, 새 법)을 참호(參互, 함께 참조)”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함께 참조한 옛 법과 새 법 가운데, 새 법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헨리 조지가 주장한 지대공유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대(地代)란 ‘토지 사용의 대가’, ‘토지 임대료’라는 뜻인데, 이 지대를 공유하는 제도가 바로 지대공유제이다.

요컨대 헨리 조지의 토지평등권 사상은 쑨원을 거쳐 안창호와 조소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처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계승된 ‘토지 평등권’ 사상은 바로 희년 토지법에 담긴 원칙이었다. 또한 비록 완전한 형태로는 계승되지 못하고 다소 거친 형태로 계승되기는 하였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이어진 헨리 조지의 지대공유제는, 지대에 대한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희년 토지법의 ‘지대 공유 및 균분’ 원칙과 그 맥을 같이 하는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희년 토지법의 원칙은 장차 통일한국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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