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주의 최후와 지대의 만인 향유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2-07 15:19     조회 : 661    
대지주의 최후와 지대의 만인 향유

한 사람이 예수님께 자기 형제 사이의 유산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요청을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눅 12:13-15, “13.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왜 거절하셨을까? 그것은 그 유산 분쟁에 내재된 두 형제의 탐심을 아셨기 때문이다. 이 유산 분쟁은 여염집이 아니라 부잣집 아들들의 유산 분쟁이었다. 그 사실은 이어지는 비유에서 ‘한 부자’를 말씀하심으로써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그 부자는 대지주였다.

눅 12:16-21, “16.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대토지, 코라)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많은, 뽈뤼스) 해 쓸 물건(곡식 등 좋은 것들, 아가타)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서 부자는 ‘많은 해 동안’(for many years) 쓸 곡식 등을 많이 쌓아두었는데(19절), 그 엄청난 수입을 생각하면 그는 매우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소유한 땅에 대해 사용된 단어가 바로 ‘대토지’를 뜻하는 ‘코라’라는 사실에서 더 명확해진다(16절). ‘코라’는 두 지경 사이의 땅(the space lying between two places or limits)으로 예컨대 산이나 강을 경계로 삼는 ‘큰 땅’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고려말기에 권문세족들이 힘없는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겸병하면서 산이나 강을 경계로 한 대토지를 소유했던 것과 같다. 그래서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갈릴리 혹은 유대 권문세족의 전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부자는 희년 토지법을 어긴 채 불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아 이처럼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대토지를 가리키는 ‘코라’에 비해 ‘코리온’이라는 단어는 ‘코라’의 ‘지소형’(指小形: 작은 조각을 가리키는 형태, diminutive) 곧 ‘코라’의 작은 조각으로서, ‘작은 땅’을 가리킨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코이노니아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행 4:34-35,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복수형, 밭들)과 집(복수형, 집들) 있는 자(복수형, 자들)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여기에서 ‘밭’은 ‘코라’가 아니라 그 지소형인 ‘코리온’의 복수형인 ‘코리오온’이 사용되었으므로, ‘밭들 있는 자들’이란 ‘큰 땅들’을 가지고 있는 대지주들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작은 땅들’을 가지고 있는 중소지주들이다. 곧 초대교회의 코이노니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지주들은 대지주들이 아니라 중소지주들이었던 것이다.

다시 누가복음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 부자가 곳간을 더 크게 지어 많은 해 동안 쓸 수 있도록 쌓아 놓은 곡식 등 좋은 것들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소작 농민들로부터 받는 소작료 곧 지대(地代, 토지임대료) 수입이다. 자기가 스스로 경작해서는 이런 엄청난 수입을 한 해에 거둘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시면서, 그 부자가 “곳간을 더 크게 지어 많이 쌓아두고 많은 해를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며 축적과 향유를 꿈꾼 그날 밤에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그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그 축적과 향유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부자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마지막 21절의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씀에서 드러난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재물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의 문맥에서 재물의 원천은 지대이므로, 이 지대를 대지주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부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사렛 메시아 선언’(눅 4:18-19)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주의 은혜의 해’에 담긴 중요한 뜻 가운데 하나이다. 나사렛 메시아 선언은 누가복음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가 되는 가장 중요한 말씀인데, 여기서 ‘주의 은혜의 해’는 안식년과 희년이다.

제7년인 안식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진 모든 부채를 탕감해야 하고, 제50년인 희년에는 가난 때문에 토지와 자유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 토지와 자유를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안식년과 희년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자기 목숨을 ‘토지 무르는 값’과 ‘속량하는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가 잃어버린 ‘토지’(하나님 나라 기업)와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노릇으로부터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속해’(죄의 빚을 탕감해)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안식년’을 선포해 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안식년과 희년을 선포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본받아 자기를 희생하여 이웃을 살리는 희년 정신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희년법에 담긴 중요한 원칙들을 우리 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희년 토지법의 ‘토지평등권 원칙’이 희년 경제법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 

요컨대 우리는 나사렛 메시아 선언에 내재된 희년의 토지평등권 원칙을 우리 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지대를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오늘날 지대를 만인이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자원적 방법과 제도적 방법이다.

첫째, 자원(自願)적 측면에서는 부동산 부자들이 코비드-19 등으로 인한 경기침체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세입자 서민들을 위해 그 임대료를 대폭 인하하고, 그 인하하고 받은 임대료 수입마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도 사용하는 것인데, 이를 자원적 희년의 실천이라고 한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유무상통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부동산 부자는 주님께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슬기로운 자’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 보물을 쌓음으로써 자기 마음을 하늘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이므로 하나님이 그 나라를 그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눅 12:32-34).

둘째, 제도(制度)적 측면에서는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환수하여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인데, 이를 제도적 희년의 구현이라고 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희년 토지법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원적 실천은 찬성하나 제도적 구현은 반대한다. 그러나 희년법은 제도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 시대의 주변 국가들에도 비록 희년법에는 못 미치지만 그와 유사한 부분적인 실행들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곤 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희년이 주변 국가들의 유사희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주변 국가들에서는 새 왕의 선의(善意)에 맡겨서 실행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인 데 비해, 이스라엘에서는 부자의 선의에 맡기지 않고 반드시 실행해야만 하는 제도였다는 점이다.

제도를 통해 50년마다 토지와 자유를 반드시 되돌려주어야 했다. 희년법을 통해 하나님은 애굽 바로에게서 자유를 얻고 가나안 땅에서 토지까지 얻는 출애굽이 50년마다 일어나도록 제도화하신 것이다. ‘출애굽의 제도화’가 바로 희년법이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지대 기본소득을 통해 희년을 제도화해야 한다.

교회에 다니며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부동산 부자들은 이 제도를 사회주의라고 낙인찍어 반대하지만 말고 자기 영혼을 위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는 인생의 진리이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수밖에 없는데,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렵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눅 12:5) 분이시다. 거지 나사로를 외면하고 이 땅에서 호의호식한 부자는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며 고통당하게 된다(눅 16:19-24). 이런 최후를 맞이하고 싶은가?

희년은 자원적 실천을 통해 거룩한 여론이 형성되어 제도적 구현으로 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 않고 자원적 실천 없이 제도적 구현만 추구하게 되면, 자칫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변질되어 유혈사태의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의 자원적 희년 실천은 세상의 부동산 부자들에게 중요한 모범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 희년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여론 형성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만약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이 자원적 희년을 실천하면서 제도적 희년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들은 어두운 밤하늘의 별들처럼 찬란히 빛나게 될 것이다. 그 의인들을 하나님은 칭찬하시며 그 나라에 기쁘게 맞아주실 것이다.


게시물 1,717건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읽음
예수원 방문에 대한 안내 예수원 21.08.30 7943
회원 가입할 때 자기 소개해 주세요. (16) 예수원 13.10.25 389685
기부금 영수증 예수원 14.01.13 385451
1642 희년 교회에 반드시 없어야 할 것과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 박창수 21.02.23 585
1641 부자와 나사로 - 희년 민주주의와 이소노미아 박창수 21.02.22 570
1640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 희년 경제를 실천하라 박창수 21.02.19 682
1639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박창수 21.02.18 653
1638 지혜와 순결(조도묵상) 멜키오 21.02.17 720
1637 노동봉사자 박상준입니다 (1) 요셉토마스 21.02.16 891
1636 사회적 신비 박창수 21.02.13 688
1635 회개와 그 열매는 무엇인가? 박창수 21.02.12 629
1634 미국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 박창수 21.02.10 678
1633 기본소득 - 마틴 루터 킹과 헨리 조지 박창수 21.02.10 646
1632 나중석 선생 관련 농민 가족의 인터뷰와 지난 역사에 대한 성찰 박창수 21.02.09 655
1631 나중석 선생과 제2의 토지개혁 박창수 21.02.09 700
1630 희년의 사람, 최춘선 박창수 21.02.08 687
1629 대지주의 최후와 지대의 만인 향유 박창수 21.02.07 662
1628 희년 사역의 핵심: 성령과 말씀 박창수 21.02.06 924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