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석 선생 관련 농민 가족의 인터뷰와 지난 역사에 대한 성찰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2-09 18:40     조회 : 654    
지난밤에 올린 “나중석 선생과 제2의 토지개혁” 글에 이어, 제가 2009년 당시 그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마을에 희년사회 형제들과 함께 가서, 나중석 선생으로부터 땅을 분배받은 농민의 아드님이신 최영복 옹(1938년생)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했는데, 아래 그 녹취를 다듬어 기재합니다. 최영복 옹은 땅을 분배받은 그 마을에 평생 살면서 농사를 지으신 분입니다.

이 녹취를 다시 읽으면서, 광복 직후에 북한에서 그리스도인 지주들이 나중석 선생처럼 자발적으로 토지를 소작 농민들에게 분배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톨스토이가 헨리 조지에게 큰 영향을 받고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지대 공유제가 러시아 토지 개혁의 원칙과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인 대지주 네흘류도프가 땅을 농민들에게 나눠주려고 하는 장면에서 말한 것처럼, 당시 북한의 그리스도인 지주들이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땅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여러분께 땅을 나눠드리려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땅 없는 농민들에게 자발적으로 땅을 나누어주었더라면, 농민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을 것이고 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존경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에 따라 전도도 자연스럽게 잘 되어 교인수도 증가했을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희년 사상이 건국 철학으로 정립되고, 어쩌면 공산화를 막고 한국 전쟁의 비극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북한에서 지주(地主)들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한 그리스도인 지주들이 희년 토지법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공산화가 북한에서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지주들이 숙청당했습니다.

그래서 지주의 아들들이 그 원한을 품고 월남하거나 은거하다가 한국 전쟁 발발을 전후로 한 시기에 피의 보복을 가하는 끔찍한 일들이 제주에서, 신천에서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 두 지역에서만 6~7만 명이 죽었지요.

코비드 19 이후 한국 사회는 빈부 양극화가 훨씬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생산의 자동화가 결합하면 대량 실업과 생존 최저임금에 따른 빈곤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견디고 견디다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요? “이 놈의 세상, 더 이상은 이대로 못 살겠다. 갈아엎어 버리자!”라고 봉기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역사에 다시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학살이나 전쟁과 같은 유혈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이 나중석 선생처럼 먼저 자발적으로 부동산 임대소득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부동산 자체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희년 실천을 하면서, 제도적으로도 희년의 토지평등권 원칙이 국가에 정책으로 실행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길이 가난한 사람들도 살고 부자들도 살고 참극을 막고 평화를 만드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는 부동산 부자들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이라고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동산 부자들은 지난 역사가 교훈하듯이 이 땅에서도 그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고, 예수님이 경고하셨듯이 하늘에서는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인터뷰 녹취록 중 일부>

(질문) 그러면 그때 나중석 선생님으로부터 땅을 한 몇 평정도 받으셨습니까?

(최영복) 아 그거는 그 양반이 저기 골고루 분배를 한 거지요. 식구(사람)당. 한 식구에 한 마지기 반씩 그렇게 인제 식구 많은 사람들은 많고 식구 적은 사람들은 적고. 그렇게 해야지. (사람 수 무시하고 가호 당) 공평하게 똑같이 나눌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된 거예요.

(질문) 그러면 한 사람 당 한마지기 반씩 (그렇지요) 그럼 어르신의 경우 어르신 집안의 경우는  그때 한 몇 평 정도를 받으셨습니까?

(최영복) 그때가 저기 그러니까 우리가 6마지기를 받았어요. 4식구니깐.

여기 이 벌판 다는 나중석 선생님의 땅인데, 여 저기 위 땅은 다 우리가 받은 땅...그러니깐은 거기가 우리가 받은 땅이 시방 있거든요.

(질문) 나중석 선생님과 관련해서 선생님이 알고 계신 일화들이 있으면 혹시 기억나시는 대로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최영복) 우리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인제 이렇게 집에서 놀잖아요. 그러면 “이리로 와라 이리로 와라.” 그래 가지고선 인제 저기 공부를 가르치시는 거예요. “너희들 집에서 놀면 안된다.” 그때는 중학교도 가기가 상당히 힘들었으니까 “그러면 집에서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공부를 와서 해라.” 그래서 인제 공부를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또 없는 사람들이 저기 죽잖아요. 죽으면 저기 공동묘지 가기가 싫다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왜. 그러면은 자기가 손수 저기 뭐냐 그 양반이 산소 자리를 줘가지고서는 묘자리도 봐가지고서 거기 가서 직접 하관도 해 주시고 그러신 양반이여. 정말 참 고마운 양반이라고요.

여기 이 자리가 그 양반의 저기 곳간이었었는데, 뭐 창고가 아니고 곳간이여 곳간. 아주 순전히 곳간이여. 곳간을 여기다 이렇게 지어가지고서는 춘궁기 때, 없는 사람들 저기 꾸어서 주고 가을에 원 값으로 다가 한말이면 한말 도로 받는 걸로다가 그렇게 해서 저기 했던 곳간이여 이게. 

(질문) 그러니깐 이자를 받지 않고

(최영복) 이자는 없이 그냥 갔다가 꿔다 놓고 꿔다 도로 갖다 갚는 거지요.

참 우리 동리에는 별 같은 양반이여 별 같은 양반. 달 같다고 봐야 하나 별 같다고 봐야 하나 참 좋은 양반이지요.

사변이 났잖아요. 사변이 나가지고선 저기 했는데 여기 인민군들이 왔었다고요. 와가지고선 여기 진을 치고서는 여기 있었거든? 그런데 그 양반(나중석 선생)이 그렇게 했다(토지를 무상분배했다)고 그러는 소리를 동네 사람 전부다 이구동성이지 그니깐 이구동성으로다가 전부 그렇게 하니깐 이 사람들(인민군)이 여기 사람 분천사람 한 사람도 죽인 사람이 없어요.

걔네들(인민군)이 참 잘 했다고 아주 그냥 칭찬을, 걔네들(인민군)도 아주 그냥, 걔네들은 공산주의니깐 똑같이 나눠 먹자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해가지고서는 이쪽에서 동네 사람들 그 양반 덕분에 진짜 깨끗하게 지나갔다구요. 정말 참 앞을 내다보고 사신 양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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