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신비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2-13 01:24     조회 : 693    
사회적 신비

신비(神祕)란 전에는 숨겨졌으나 이제는 계시된 하나님의 비밀이다. 신비는 유한한 사람의 이성으로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신비(뮈스테리온)라는 단어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교회, 그리스도인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①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마 13:11, 막4:11, 눅 8:10), 하나님의 복음(고전 4:1, 엡 6:19), 하나님의 구원 경륜(롬 11:25, 16:25, 엡 1:9, 3:9, 계 10:7).

② 예수님(엡 3:3-4, 골 1:26-27, 2:2, 4:3, 딤전 3:16).

③ 성령님(고전 2:4-14).

④ 교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엡 5:32), 교회의 사자(계 1:20).

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의 믿음(딤전 3:9), 그리스도인의 부활(고전 15:51).

신비의 핵심은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사람을 만나주시는 은총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러한 신비의 은총 가운데 공의를 선포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공의를 지향하는 신비를 나는 ‘사회적 신비’(Social Mystery)라고 명명한다. 그런 점에서 예언자들은 ‘사회적 신비가들’이었다.

우리는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신비와 공의를 모두 추구해야 한다. 신비와 공의 둘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면 안 되고, 둘 모두를 중시해야 한다.

칸트의 명제를 빗대어 표현하면, 공의 없는 신비는 공허하고, 신비 없는 공의는 맹목이다.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이자 행동의 본질이므로, 공의 없이 하나님을 만나려는 신비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공의 없는 신비는, 무한히 광대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좁은 이해 안에 한계 지어 하나님을 만나려 하므로 매우 좁은 신비, 미성숙한 신비로 전락하여, 거짓 신비가 되기 쉽다.

반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가 없는 공의는, 하나님의 눈으로 공의를 올바르게 볼 수 없으므로 눈먼 공의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맹목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신비 없는 공의는, 생명 없이 메마른 공의로서, 자기 의와 교만에 빠지는 공의, 타인을 정죄하는 공의로 전락하여, 자신과 타인을 모두 파괴하는 공의, 사람 잡는 공의, 사람을 죽이는 공의가 되기 쉽다.

요컨대 공의 없는 신비는 공허하고, 신비 없는 공의는 맹목이다. 우리는 신비와 공의를 모두 추구해야 한다.

신비는 유한과 무한의 접촉, 곧 사람과 하나님의 만남에서 경험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신비의 핵심이다. 또 신비는 죽음과 생명의 만남에서도 경험될 수 있다. 따라서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비의 핵심이다. 신비는 우리가 그 예수님께 초점을 맞출 때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신비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경험할 수 있다. 신비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걸을 때 경험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특히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신비 가운데 공의를 선포해야 한다.

웹진 <가톨릭일꾼>의 편집장인 한상봉님이 그 웹진에 쓴, ““우리 주교님 왜 저러지?”보다 중요한…신비와 예언”(2017.02.15 23:39)이라는 제목의 칼럼에는 신비와 예언에 대한 좋은 통찰이 담겨 있다.

“헨리 나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신비가가 되거나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느님과 깊이 만나는 ‘신비’의 문이 세상을 깊이 만나는 ‘예언’의 문과 마주쳐 소리를 내는 ‘일꾼’이 필요하다.”

“신비가는 자기 속마음을 들여다보며 깊디깊은 내면에서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사목자들이 ‘복음적 열정’을 지니지 못하는 이유를 “그분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복음의 기쁨>에서 말했다.”

“예언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하느님과 만난 고유한 개인이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예언자는 이제 자신의 신앙고백이나 생각을 선포하지 않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의탁하신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한다.”

그런데 신비와 관련하여 주의해야 할 사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아무리 신비 체험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고전 13:2). 우리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고, 신비 체험 자체에만 집착하여 사랑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결코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신비 체험을 맹종하지 말고 사탄에게 속지 않도록 분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고,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후 11:14-15). 자신과 타인이 경험한 모든 신비 체험을 무비판적으로 다 받아들이지 말고, 주의하여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되,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가운데 그렇게 하는 것이다.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서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은 신비와 관련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신비, 그리고 이웃을 위한 정의와 인자를 모두 추구해야 한다.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면 안 되고, 둘 모두를 중시해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복음적 해방신학자인 구스타보 구띠에레쯔는 “해방을 위한 영성”(A Spirituality for Liberation)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비가의 언어는 예언자의 언어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 이 두 언어 모두를 필요로 한다.

예언자의 언어는 타인들을 위한 우리의 헌신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한 보편애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애를 동시에 보여 주는 기독교적 사랑에 대해 말한다.

신비가의 언어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며 이 또한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할 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일의 긴박성을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함께 걷는 신비 가운데 공의를 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골방 기도와 더불어 주일 예배가 참으로 귀중하다.

먼저 골방 기도의 시간은 단독자로 은밀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다음으로 주일 예배의 시간은 공동체로 함께 또한 단독자로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의 은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시 84:7, “그들은 (공동체로 함께)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단독자로 홀로) 나타나리이다.”

비록 코비드-19 때문에 함께 모이지 못하고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따로 예배드리더라도, 그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예배 시간에 특히 찬양과 침묵 기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영감 있는 찬양을 드리며, 설교를 듣는 가운데 교회 공동체와 성도 각 개인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여 마음에 새기고, 설교 후에는 그 말씀에 따라 침묵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들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골방 기도와 주일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신비의 은총을 누리는 가운데, 일상의 삶에서 날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새 힘을 받아,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공의를 선포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구약 예언자들처럼 사회적 신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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