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2-18 22:54     조회 : 653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누가복음 14:16-24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큰 잔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15절)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으나 참석을 거절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눅 14:16-20, “16.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이 사람들은 밭을 샀거나 소 다섯 겨리를 샀거나 장가든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혹자는 ‘일상에 바쁜 보통사람들’로 해석하는데, 그런 해석은 문맥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의 소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한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문맥에 부합한다. 왜냐하면 일단 누가복음 14장의 결론부에서 소유의 문제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럼 이들을 왜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라고 보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이어지는 본문에서 주인이 ‘가난한 자들’을 첫 번째로 언급하면서 데려오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유한 자들’이다.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곧 앞서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 초대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럼 이제 가난한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둘째, 초대를 받았으나 거절한 세 사람 가운데 앞의 두 사람 곧 밭을 산 사람과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은 모두 상당한 재력을 갖춘 자들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유한 자들’이다. 그런데 이 부자들은 모두 대지주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사람은 새로 밭을 사서 자기 땅을 늘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 사람 역시 새로 산 밭을 가는 데 소 다섯 겨리가 새로 필요할 만큼 가진 땅이 넓기 때문이다.

셋째, 이들을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유한 자들’로 해석하는 이유는 마지막 사람 곧 장가든 사람 역시 문맥상 20절의 밭을 산 사람과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을 잇는 부자이자 21절의 가난한 자와 대조되는 부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문맥상 주인이 큰 잔치를 베풀면서 첫 번째로 초대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본문에 등장하는 장가든 사람은 이제 막 첫 장가를 든 십대 후반의 애송이 청년 서민이 아니라 기혼자로서 새 장가를 든 중년 전후의 부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문맥을 떠나서 해석하면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 결혼하므로 장가든 사람은 빈부와 관계없이 모든 남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려 할 때는 반드시 그 단어가 위치한 문맥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해석학의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본문에 등장하는 장가든 사람은 부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추론하면 다음과 같다.

이 장가든 사람의 경우는 당시 대지주인 부자들의 악한 일부다처나 이혼의 관행을 반영하는 것이다. 곧 부자들이 밭을 새로 사고, 또 새로 산 밭을 갈기 위해 새로 소 다섯 겨리를 사며, 일부다처나 이혼이라는 당시 부자들의 악한 관행을 따라 새로 장가드는 현실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 일부다처나 이혼이 부자들의 관행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부다처나 이혼을 실행하려면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으므로 오직 부자들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유다인들에게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여러 부인을 두고 가계를 꾸려가는 것은 엄청난 금전 부담을 초래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자들만이 일부다처제를 누렸다.”(요아힘 예레미야스, 133쪽).

결혼계약서(결혼증서)에는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할 경우 부인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적혀 있었고(요아힘 예레미야스, 459쪽 각주 73), 따라서 이혼할 때 남편은 아내에게 그 돈을 지급해야 했는데, 그 금액은 중간계층이나 가난한 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인은 자기 이외에 첩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다름 아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다수의 부인들을 거느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두 번째 부인을 취하는 사람은 첫 번째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결혼 증서에 명시된 많은 돈 때문에 이혼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요아힘 예레미야스, 462쪽).

“갈릴래아 사람 라삐 요세(주전 135년 이전)의 부인은 악한 사람이었지만 요세는 결혼증서에 기록된 금액이 너무 많아 그녀와 이혼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그 금액을 마련해 주었다.”(요아힘 예레미야스, 463-464쪽 각주 108).
 
참고로 혹자는 가난한 자들이 아닌 사람들 중에는 부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계층의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가난한 자’가 아닌 사람은 ‘부자’뿐만 아니라 ‘중간계층’도 있으므로 일리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당시 중간계층의 대부분은 소농인데, 이들은 먹고 살기에도 빠듯하여 새로 밭을 사거나 그 새로 산 밭을 갈기 위해 소 다섯 겨리를 사거나 일부다처나 이혼을 이용해 새 장가를 들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벤-다비드가 조사한 바대로 일인당 연간 31데나리온을 기본으로 한다면 일곱 명의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주를 위해서 대략 217데나리온이 필요하다. 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소농이 벌어들이는 금액은 순수하게 150데나리온이다. (중략: 인용자) 150데나리온은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하루 열량 2,322칼로리만을 보장하게 한다. 옷이나 기구나 가재도구와 같은 것을 필수적으로 구입하는 것은 이러한 최소한의 수입에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적자는 좋은 시절에는 축소시키거나 줄일 수 있으나, 흉년이나 갑작스런 병, 전쟁과 노략질, 기근이나 또 다른 액운으로 작은 소유지를 팔아야 하는 정도로 확대된다. 이전에 독자적인 소농이 자기 자신의 땅에 임차인이 되거나 또는 그 땅에서 일일노동자로 일해야 한다. 그 즉시 그는 가난한 무산계급에 속하게 되며, 그곳에서 재기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따라서 벤-다비드는 다음과 같이 종합한다: “그 시대의 농부는” “심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족을 근근이 먹여 살릴 수 있었고, 아주 절약을 하더라도 언제나 빈곤했다.””(뷜리발트 뵈젠, 307-308쪽).

요컨대 큰 잔치에 초대를 받았으나 참석을 거절한 사람들은 ‘일상에 바쁜 보통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한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다. 이들은 특히 대지주들로서, 자기들이 소유한 이 세상의 땅 때문에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고 만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된다.

눅 14:22-24, “22.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세상의 땅을 더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려면 이 세상의 땅을 버려야 한다.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영생의 길을 질문한 부자 관리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 소유 곧 이 세상의 땅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그 말씀 앞에서 누가복음 14장의 큰 잔치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 곧 밭을 샀거나 소 다섯 겨리를 샀거나 장가든 부자들은 순종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눅 18:22-25,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해 혹자는 그 부자 관리 한 사람에게만 특정해서 하신 말씀이지 다른 부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아니라고 해석하면서 다른 모든 부자 그리스도인들을 안심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틀렸다. 왜냐하면 이미 눅 14:33에서,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중의 누구든지”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부자 관리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 특히 모든 부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모든 사람들 그 가운데 모든 부자들 특히 부동산 부자들은 이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반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세상의 부동산을 더 귀중히 여기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면 절대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자기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부동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오직 그 길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영생의 길이다.

참고문헌

뷜리발트 뵈젠 지음, 황현숙 옮김, 『예수 시대의 갈릴래아』, 한국신학연구소, 2006.
요아힘 예레미야스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옮김,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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