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 - 희년 민주주의와 이소노미아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2-22 19:07     조회 : 578    
부자와 나사로 - 희년 민주주의와 이소노미아
반(反)희년 세상을 희년 세상으로 변혁하라!

눅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의 연장선상에 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고,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었다. 율법 준수를 강조하면서도 실상은 장로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하고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하셨다.

특히 재물에 대한 가르침의 문맥에서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희년 경제법처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참고로 레위기 25장의 희년 경제법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단계적이고 총체적인 보호법이다. 가난한 사람이 먼저 땅을 잃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집을 잃고 그 다음에 빚을 지고 그 다음에 동족 히브리인에게 몸이 팔리고 마지막으로 부유한 이방인에게 몸이 팔리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가난한 자를 보호하고 총체적으로 그를 존엄한 자유인으로 회복시키는 데 초점을 둔 법이 바로 희년 경제법인 것이다.

이어지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의 결론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 역시, 모세와 선지자들이 가르친 희년 경제법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말씀조차 듣지 않으면, 어떻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의 말씀을 듣겠느냐는 뜻이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오히려 더 높은 수준으로 철저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희년 경제법은 구약 이스라엘과 같은 죄인들에게 실행하라고 주신 법이다. 희년 경제법에 대해 너무 이상적이어서 실현할 수 없는 법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상 이 희년 경제법은 죄인들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죄인들에게 주신 가장 기본적인 법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구약 시대에 희년 경제법의 핵심인 희년 토지법이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희년 토지법이 구약 역사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실행되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만 밝힌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먼저 희년 경제법이 무너진 반(反)희년 세상의 참상을 폭로한다(눅 16:19-21). 이어서 그런 세상에서 향락을 누려온 반(反)희년의 부유한 권력자들에게 장차 내세에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눅 16:22-26). 마지막으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라고 강조하는데(눅 16:27-31), 이것은 희년 경제법과 같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법을 실행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반(反)희년의 부유한 권력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희년 경제법을 실행하라고 촉구하는 말씀인 것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자는 자색 옷을 입었다. 그런데 당시에 자색 옷은 초고가의 왕복이었다. 따라서 이 부자는 왕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집에는 대문이 있다. 이것은 그의 집이 대저택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요컨대 이 부자는 대저택에 살고 있는 왕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대지주라는 사실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당시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롯과 그 왕족들은 갈릴리의 최대지주들이었기 때문이다(뷜리발트 뵈젠, 303-306쪽).

그런데 왕처럼 대지주인 이 부자의 반대편에 그 이름이 나사로인 한 거지가 있다. 그는 헌데 투성이 몸으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한다.

여기서 ‘거지’라는 말은 경제적 측면에서 아무 재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철저히 무력해져서 아무 권력도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반대편의 부자가 경제적 측면에서 대토지와 대저택과 막대한 재물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왕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과 대조적이다. 성경 본문의 텍스트에서도, 또한 현실 세계의 콘텍스트(역사, 사회)에서도, 한 사람의 경제력은 그 사람의 정치권력과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게 마련인 것이다.

한편에는 왕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토지와 대저택을 소유한 부자가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어떤 권력도 없고 어떤 재물도 없이 병든 거지 나사로가 누워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야기가 너무 익숙하고 또 오늘날에도 이런 상황이 온 세계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므로, 이런 상황이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뒤틀린 상황인지 잘 깨닫지 못한다. 희년 경제법이 실현된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희년은 제50년인데, 가난 때문에 땅과 집과 자유를 잃고 가족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가난한 사람들이, 희년이 오면 잃어버린 땅과 집과 자유를 되찾고, 헤어진 가족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이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희년에 땅을 되찾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가족 구성원의 수를 따라, 그 수가 많으면 많은 땅을, 수가 적으면 적은 땅을 나눠주심으로써, 토지를 일인당으로 환산하면 거의 균등하게 분배해 주셨다(민 33:54). 그리고 이 땅을 그 가족이 자손 대대로 물려주게 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의 가족이 희년에 되찾는 땅은 바로 이 땅인 것이다.

따라서 희년에 가난한 사람이 땅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50년마다 모든 사람이 토지 평등권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비록 부모는 가난할 수 있으나, 그 자녀는 50년마다 한 번씩 땅을 되찾음으로써, 모든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게 재출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가난이 대물림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희년은 ‘제도화된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이 희년에 자유를 되찾고 또 땅을 되찾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때 자유를 얻고 또 땅을 얻은 것과 같다. 곧 희년은 출애굽 사건이 50년마다 일어나도록 제도로 만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땅을 물려받아 경작하는 이 ‘희년 경제 체제’에서는,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자기 품을 팔아 살아가는 품꾼은 생길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그 자손의 자유를 영구히 팔아넘기는 노예나 거지는 결코 생길 수 없다. 곧 모든 사람이 평등한 자유민으로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희년 경제 체제는 ‘희년 정치 체제’의 기반이 된다. 희년 정치 체제는 1인 독재 왕정(王政)과 소수 대지주 귀족정(貴族政)을 모두 거부한 채,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섬기는, 평등한 자유민의 12지파 분권적 연합 체제이다. 그런데 이 희년 정치 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땅을 물려받아 경작하는 희년 경제 체제이다. ‘평등한 자유’와 ‘분권적 연합’을 알맹이로 삼는 ‘희년 민주주의’(Jubilee Democracy)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토지 평등권인 것이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와 토지 평등권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정치학을 개척한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생각을 밝혔다.

아리스토텔레스(Αριστοτέλης, 기원전 384년-322, 그리스)의 『정치학』에 따르면, 모든 국가의 시민들은 부유한 계층, 중간 계층, 가난한 계층으로 구성된다. 절제와 중용이라는 일반 원칙에 따라, 재산 소유의 측면에서도 중간 상태가 최선이며, 양 극단의 상태, 곧 지나치게 부유하거나 지나치게 가난한 상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 국가가 중간 계층 없이 지나치게 부유한 계층과 지나치게 가난한 계층으로 양극화되면, 그 국가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 계층은 마치 노예처럼 복종하는 것밖에 모르고, 다른 한 계층은 노예의 주인처럼 지배하는 것밖에 모른다.

“그 결과로 국가는 자유인이 아니라 단지 노예와 주인으로만 이루어져서, 한쪽에는 부러움과 시기심만 있고 다른 한쪽에는 멸시만이 있는 국가가 되고 만다.……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다른 사람들은 재산이 전혀 없는 경우,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민주주의가 단순한 과두정치로 변질되거나, 아니면 이 두 극단에서 모두에 대한 반발로 참주정치가 생겨날 수도 있다.”(아리스토텔레스, 400-401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중간 계층이 커야 시민들 사이의 분열이 생길 가능성이 가장 적기 때문에, 정치 공동체의 가장 좋은 형태는 권력이 중간 계층의 손에 있는 사회이며, 중간 계층이 많은 국가가 좋은 정부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중간 계층이 많은 국가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여러 정책 제안들을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토지 정책으로서, 부유한 계층에 대한 것과 가난한 계층에 대한 것, 크게 두 가지이다.

곧 부유한 계층이 일정한 한도 이상의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고, 가난한 계층이 일정한 토지를 구입하기에 충분한 생활자금을 국가가 가난한 계층에게 무상으로 나눠주자는 것이다.

플라톤에 비해 우파로 분류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중간 계층을 크게 만들어 과두정치(소수 귀족의 지배)나 참주정치(1인 참주의 지배)로 전락하지 않는 최선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이와 같이 토지 평등권에 근접하는 강력한 토지 개혁 정책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토지 평등권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요컨대 성경에서 희년 민주주의의 기반은 바로 토지 평등권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더라도 바람직한 국가와 민주주의의 기반은 바로 토지 평등권이다. 토지 평등권이 짓밟히면 민주주의도 무너지게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토지 불평등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 알맹이는 찾아볼 수 없다. 평등한 자유민에 의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지 평등권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토지 평등권은 바로 ‘무(無)지배’를 뜻하는 아나키즘의 원류인 ‘이소노미아’의 토대이기도 하다. 그럼 이소노미아는 무엇인가?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작 <세계사의 구조>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해 좀 생소한 주장을 편다. 흔히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라타니는 민주주의가 소아시아 해안 지역 이오니아에서 발원했다고 말한다. 이오니아에서 출현한 이소노미아(isonomia)가 민주주의의 뿌리라는 것이다. 이소노미아는 권리의 평등을 뜻하는 그리스어인데, 민주주의와 거의 같은 말로 통용돼 왔다. 민주주의가 아테네에서 자라났듯이 이소노미아도 아테네의 산물이라는 것이 표준적인 설명이었다. 그런데 가라타니는 한나 아렌트의 해석에 기대어 이소노미아를 민주주의와 명확하게 분리한다. 아렌트는 이소노미아를 비지배(no rule)로 번역했다.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 곧 인민(데모스)의 지배(크라시)이므로 지배의 한 형태이지만, 이소노미아는 지배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지배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가 이소노미아다.

  이 이소노미아의 기원이 바로 이오니아에 있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이곳에 기원전 10~8세기에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이주해 수많은 폴리스를 세웠다. 이 지역에선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곳에 붙박여 강자의 지배를 받으며 불평등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자유로웠기 때문에 평등했던 곳이 바로 이오니아 도시국가였다. 이 이소노미아의 땅에서 탈레스(철학), 헤로도토스(역사), 히포크라테스(의학)가 나왔다. 훗날 이소노미아의 정신이 그리스 본토로 들어가 그 풍토와 타협해 성립한 것이 민주주의였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이소노미아의 불완전한 형태였다. 언제든 참주정으로 떨어지거나 데마고그의 손아귀에 들어갈 위험이 있었다.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민주주의도 못하는 판에 꿈이 너무 큰 것 아닌가. 그러나 사람은 꿈꾸는 동물이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특권 지배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의 꿈을 버릴 수 없다.”(고명섭, "이소노미아").

이소노미아 곧 권리의 평등은 구체적으로 경제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뜻하는데, 그 기반은 바로 토지에 대한 권리의 평등이다. 위에 인용한 글에는 토지 평등권이 이소노미아의 토대라는 사실이 직접 명시되지 않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는 표현에 간접적으로 암시되어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해서 가족의 노동력이 허용하는 한도만큼 스스로 땅을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는, 마치 미국에서 각 가족에게 일정한 토지를 분배해 준 홈스테드법이 실행되던 서부 개척 시대에 광활한 땅이 이주민 개척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대지주 계급과 소작인 계급이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사회이며, 토지 평등권이 실현되는 사회이다. 미국 민주주의와 아메리카 드림의 기반이 바로 토지를 평등 분배 받은 자영농민들이었던 것처럼, 소아시아 이오니아 해안에서 실현된 ‘무지배 평등권’(이소노미아)의 기반 역시 토지 평등권이었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광활한 땅이 남아 있지 않는데 어떻게 이소노미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가?” 헨리 조지가 주창한 지대공유제를 실행하면 가능하다. 지대공유제를 실시하여 지대를 거의 전부 환수하면, 지가가 거의 ‘0’이 되고, 투기용으로 저(低)사용되거나 유휴(遊休)화된 토지를 포함하여 모든 토지의 사용 기회가 그것을 원하는 만인에게 개방된다.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해안에서 이소노미아가 실현되던 시대처럼,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처럼 모든 토지의 사용 기회가 만인에게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더 이상 대지주 부자도 없고, 땅 한 평 없는 거지도 없다. 모두가 자기가 땀 흘려 노동한 대가로 살아간다. 존엄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희년 세상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넘어 세속 사회 가운데 실현되는 중요한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유학의 이상인 대동(大同) 세상이기도 하다. 또한 고(故) 백기완 선생이 역설한 노나메기 세상의 실체이기도 할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희년 경제법이 무너진 반(反)희년 세상의 참상을 폭로하고, 그런 세상에서 향락을 누려온 반(反)희년의 부유한 권력자들에게 장차 내세에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한다. 그리고 모세와 선지자들이 외친 희년 경제법을 들으라고 촉구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루 속히 반(反)희년 세상을 희년 세상으로 변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명섭, "이소노미아", <한겨레신문>, 2014년 4월 29일 등록.
뷜리발트 뵈젠 지음, 황현숙 옮김, 『예수 시대의 갈릴래아』, 한국신학연구소, 2006.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손명현 옮김,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시학』, 동서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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