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교회에 반드시 없어야 할 것과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2-23 00:58     조회 : 676    
희년 교회에 반드시 없어야 할 것과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

앞선 눅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희년 경제법을 폐기한 반(反)희년의 부유한 권력자들에게 장차 있을 내세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희년 경제법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반(反)희년 세상을 희년 세상으로 변혁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눅 17:1-10은 교회를 희년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없어야 할 것과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한 말씀이다. 희년 교회 안에서 반드시 없어야 할 것은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은 용서와 신앙과 겸손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 - 반(反)희년 상황에 내버려두어 죄짓게 하지 말라

눅 17:1-2,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여기서 작은 자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 앞선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지 나사로와 같다.

그리고 실족은 좁은 의미로는 배교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범죄를 가리킨다. 범죄가 배교를 포함하므로 실족을 범죄로 표현하더라도 무리는 없다.

그럼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온 세상이 반(反)희년 세상이므로 그 악한 세상의 조류가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교회 안에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작은 자가 실족하는 일이 세상 속에서는 물론이고 교회의 세속화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그 비참한 반(反)희년 상황에 내버려두어 죄를 짓게 하지 말고 궁극적으로 배교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앞선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로 표현하면, 거지 나사로를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비참한 상황에 내버려두어 그가 생존을 위해 죄 짓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이런 상황에 처한 작은 자가 어떤 죄를 지을 유혹에 빠지기 쉬울까? 바로 생계형 범죄인 도둑질이다.

잠 30:8중-9, “8중.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9절하,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는 잠언 저자의 고백처럼, 신자인 작은 자가 반(反)희년 상황에 방치되어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가 그 고통 때문에 도둑질하게 될 수 있고, 그에 따라 그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가 신앙을 떠나 배교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작은 자가 반(反)희년 상황에 방치되면 실족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교회 안에서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그 비참한 반(反)희년 상황에 내버려두어 죄를 짓게 하지 말고 나아가 배교하게도 하지 말고, 그 작은 자에게 희년을 선포하여 그 비참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건져내라는 뜻이다.

이런 해석은 앞선 문맥인 누가복음 16장 본문 전체와 일관되는 해석이자, 누가복음 전체의 해석 열쇠가 되는 본문 곧 주의 성령이 임하신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에게 ‘주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선포하신다는 ‘나사렛 메시아 선언’(눅 4:18-19)와도 일관되는 해석이다.


2. 형제가 일곱 번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 반(反)희년 세상에서 몸에 밴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3-4,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여기서 ‘일곱 번’은 ‘항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형제가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말씀은 항상 용서하라는 뜻이다.

그럼 일곱 번 짓는 죄 곧 항상 짓는 죄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앞선 문맥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예컨대 도벽(盜癖)을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는 말씀은 그 작은 자인 형제가 반(反)희년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몸에 배어버린 죄의 습벽 때문에 죄를 반복적으로 계속 범하더라도, 그에게 ‘진리’의 말씀을 따라 경고하고, 그가 회개하면 ‘은혜’의 넓은 품으로 그를 용서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충만하게 나타난 은혜와 진리(요 1:16)의 정신으로 그를 용서하고 또 경고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3. 믿음을 가지라 -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하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하라

눅 17:5-6,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사도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럼 어떤 믿음을 구한 것일까? 앞선 문맥을 따르면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할 수 있는 믿음, 또 그 작은 형제가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할 때마다 그를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어서 예수님이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사도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는 뜻이다. 곧 믿음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사도들은 자기들에게 작지만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작은 믿음에 믿음을 더해 달라고 구한 것인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들에게 믿음은 전혀 없었다.

그럼 사도들에게 믿음이 전혀 없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를 만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믿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 그 믿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가난한 자에게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고 다시 살아나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사도들에게 없다는 것이다. 얼마 후에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해 주셔도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눅 18:31-34, “31.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에 대한 이 믿음이 없는 한 사도들은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할 수도 없고 그 작은 형제가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할 때마다 그를 용서할 수도 없다. 예컨대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서 희년 경제를 실천함으로써 가난한 사람이 없는 희년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자 성도의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행 4:33-35,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부활과 희년! 초대교회가 희년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례가 구약 성경에서도 나온다.

왕하 8:1-6, “1.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2.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3.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5.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6.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이 본문의 핵심 내용은 한 아이의 부활을 알게 되자 별로 선하지도 않은 이스라엘 왕이 여인에게 그 땅과 집을 돌려주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땅과 집을 돌려받는 것은 그 여인에게 희년이 선포된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제50년인 희년에 잃은 땅과 집을 되찾기 때문이다. 요컨대 왕은 아이의 부활을 알게 되자 여인에게 희년을 선포한 것이다. 부활과 희년! 구약 열왕기에서 이 둘의 관계가 그림자처럼 있었다면, 신약 사도행전에서는 환하게 드러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희년 경제를 실천하지 못하는 핵심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고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면, 그리고 우리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면, 우리는 희년 경제를 실천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우리 교회를 희년 공동체로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희년의 사람들과 희년 교회들이 바로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

요컨대 사도들은 예수님께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하고 그 작은 형제가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할 때마다 그를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해달라고 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다고 지적하셨다. 이 믿음이 없는 한 사도들은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할 수도 없고 그 작은 형제가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할 때마다 그를 용서할 수도 없는 것이다.


4. 무익한 종이라고 겸손히 말하라 -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하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한 후에는 절대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하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라

눅 17:7-10, “7.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10절상,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앞선 문맥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하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한 후를 가리킨다.

그리고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에서 “우리가 하여야 할 일” 역시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하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하는 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본문은,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형제를 용서하고 희년 경제를 실천한 후에는 겸손하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라는 말씀이다. 그럼 왜 이 말씀을 마지막 단락에서 하셨을까? 그것은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형제를 용서하고 희년 경제를 실천하는 사람이 ‘자기 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이 영적 교만은 어렵게 일군 희년 공동체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되,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가운데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요컨대 눅 17:1-10은 교회 안에서 제자들이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희년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없어야 할 것과 반대로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을 예수님이 차례로 말씀하신 본문인데, 차례대로 다음과 같다.

첫째,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교회 안에서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그 비참한 반(反)희년 상황에 내버려두어 죄를 짓게 하지 말고 나아가 배교하게도 하지 말고, 그 작은 자에게 희년을 선포하여 그 비참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건져내라는 뜻이다.

둘째, 형제가 일곱 번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말씀은, 그 작은 자인 형제가 반(反)희년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몸에 배어버린 죄의 습벽 때문에 죄를 반복적으로 계속 범하더라도, 그에게 ‘진리’의 말씀을 따라 경고하고, 그가 회개하면 ‘은혜’의 넓은 품으로 그를 용서하라는 뜻이다.

셋째,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하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하라는 뜻이다.

넷째, 무익한 종으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겸손히 말하라는 말씀은, 작은 자를 위해 희년 경제를 실천하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한 후에는 절대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하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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