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2-25 01:31     조회 : 64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글은 지난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눅 16:1-8)에 대한 글("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 희년 경제를 실천하라")에 이어, 그 다음 본문인 눅 16:9-13에 대한 글이다.

눅 16:9-13,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대조되는 대상들을 각각 다른 여러 단어들로 지칭하고 계신다.
 
A. “불의의 재물”(9절)=“지극히 작은 것”(10절)=“불의한 재물”(11절)=“남의 것”(12절)

B. “영주할 처소”(9절)=“큰 것”(10절)=“참된 것”(11절)=“너희의 것”(12절)

이 대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불의의 재물”(9절)은 “지극히 작은 것”(10절)이고, 그에 반해 “영주할 처소”(9절)는 “큰 것”(10절)이다. 따라서 큰 것(영주할 처소)을 포기하고 지극히 작은 것(불의의 재물)에 집착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불의의 재물)을 버리고 큰 것(영주할 처소)을 얻는 자이다. 이것이 8절에서 “이 세대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인 “옳지 않은 청지기”에 대해 ‘지혜롭게’, ‘지혜로운’이라는 단어들로 두 번이나 말씀하신 이유이다. 현세의 미래를 위해 준비한 이 세대의 아들들(옳지 않은 청지기)이 지혜로운 자라면, 내세의 영원을 위해 준비하는 빛의 아들들은 더욱더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자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죽은 다음에 음부에서 고통당하게 된다. 그 부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던 것이다.

(2) “불의한 재물”(11절)은 “남의 것”(12절)이다. 곧 불의한 재물은 이웃의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이웃의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것으로 갖고 있는 재물이 바로 불의한 재물인 것이다. 직전의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눅 16:1-8)에서는 이자금지법(신 23:19-20)을 어기고 동족 이스라엘 사람에게 받은 이자, 안식년 부채탕감법(신 15:1-3)을 어기고 안식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탕감해주지 않은 부채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 비유(눅 12:16-21)와 '큰 잔치' 비유(눅 14:16-24)와 '부자와 나사로' 비유(눅 16:19-31)에서는 대지주가 희년 토지반환법(레 25:28)을 어긴 채 희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에게 돌려주지 않고 계속 소유하고 오히려 새로 매입하여 계속 확대해 나간 모든 토지와 그 토지를 소작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받아 자기를 위하여 쌓은 모든 지대(地代, 소작료)가 바로 율법에 따라 이웃의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것으로 갖고 있는 불의한 재물이다.

또한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는 추가로 희년 주택반환법(레 25:31-33)과 극빈자 동거법(레 25:35, 사 58:7)을 어긴 채, 희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잃은 가난한 이웃에게 돌려주지 않고 부자들이 계속 소유한 모든 촌락 주택 또는 레위인 성읍 주택, 그리고 집을 잃고 빈손으로 극빈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살 방을 자기 집에 마련해주지 않음으로써 나사로와 같은 가난한 사람을 노숙하는 생활로 내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든 부자들의 대저택에 있는 모든 사랑채나 행랑채의 사용권이 바로 율법에 의하면 이웃의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것으로 갖고 있는 불의한 재물이다.

(3) “불의한 재물”(11절)은 “참된 것”(11절)과 대조된다. 따라서 불의한 재물은 거짓된 것이다. 그럼 불의한 재물이 왜 거짓된 것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참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여기서 참된 것은 “영주할 처소”(9절)를 가리킨다. 곧 참된 것은 영원한 것이다. 그럼 거짓된 것은 무엇인가?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바로 거짓된 것이다.

잠 12:19,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참된 말은 영원히 보존되지만 거짓된 말은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린다. 곧 참된 것은 영원히 보존되지만 거짓된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린다.

잠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곱거나 아름다운 용모가 거짓되거나 헛되다는 말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고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원하지 않고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바로 거짓된 것이다. 불의한 재물이 그렇다. 악인들이 불의한 재물을 쌓는 이유는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한 재물은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는 불의한 재물을 쌓은 악인의 존재 자체가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심판을 받게 된다.

시 37:9,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 37:35-36, "35.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그럼 이 본문의 결론인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절)라는 말씀을 살펴보자.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재물은 사람에게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갖고 있으니 각성하고 주의하여 재물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은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어떤 누가복음 연구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그 앞의 '불의의 재물'(9절)과 '불의한 재물'(11절)은 바로 '재물'(13절) 자체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곧 모든 재물이 불의하다고 해석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재물 자체가 사람에게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 재물 자체가 사람에게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재물이 불의하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이는 마치 교회의 담임목사가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모든 담임목사가 불의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적 오류이다. 올바른 논리적 추론은 모든 담임목사들이 아니라 그 가운데 실제로 예컨대 중대형교회 담임목사직 세습과 같은 교회 사유화 조치를 자행함으로써 스스로 우상숭배의 대상이 된 것을 드러낸 담임목사들만 불의한 담임목사라고 결론짓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재물이 아니라 그 가운데 실제로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된 재물만 불의한 재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럼 실제로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된 재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 아래 두지 않고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섬기는 재물이다. 사람이 재물을 마땅히 두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탐욕 때문에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모은 재물이 바로 실제로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된 재물 곧 불의한 재물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재물이 불의한 게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모은 재물이 불의한 것이다. 성경은 시종일관 불의한 재물뿐만 아니라 정당한 재물도 말한다. 예컨대 같은 누가복음에서 세리장 삭개오의 경우를 살펴보자.

눅 19:8-9,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여기서 만약 삭개오의 소유 '전부'가 불의하다고 간주하게 되면, 삭개오의 고백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인정은 타당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삭개오의 소유 가운데 '전부'가 아니라 최대 8분의 1이 속여 빼앗은 불의한 재물이었고, 최소 8분의 3은 정당한 소득이었기 때문에, 그 불의한 재물의 4배인 최대 8분의 4 곧 최대 절반을 그 피해자들에게 갚고 나머지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세리의 모든 수입이 불의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세례 요한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눅 3:12-13, "12.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세례 요한이 세리들에게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 "부과된 것"(13절)에는 부과된 세금뿐만 아니라 세리들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급료도 포함된 것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부과된 세금만 걷음으로써 세리들이 급료를 전혀 받지 못하게 되면 그 일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세리들과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군인들에게 그 급료는 받아도 되는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14절). 요컨대 세리의 수입 가운데에는 정당한 급료도 있었고 불의한 재물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불의한 재물은 세례 요한이 금하고 정당한 급료는 인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구약 성경 역시 정당한 재물이 있음을 말한다. 예컨대 구약 오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재물을 많아지게 하실 것이라고 천명한다.

레 26:3-5, "3.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4.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5.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신 28:11-14, "11.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이처럼 구약 성경과 누가복음에서 정당한 재물이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모은 재물이 불의한 재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재물의 '획득'뿐만 아니라 재물의 '사용'에도 모두 해당된다.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은 획득과 사용 이 두 측면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먼저, 재물을 어떻게 획득하는가에 따라 정당한 재물이 될 수도 있고 불의한 재물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획득했다면, 예컨대 이자금지법을 어기고 이자를 받아 재물을 모았다면 그 재물은 불의한 재물이 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획득했다면, 예컨대 기업으로 받은 땅에서 열심히 일해서 재물을 모았다면 그 재물은 정당한 재물이 된다.

다음으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정당한 재물이 될 수도 있고 불의한 재물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사용했다면, 예컨대 부채탕감법을 어기고 안식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부채를 탕감해주지 않고 그것을 독촉해서 끝내 받아내어 자기를 위해서 사용했다면 그 재물은 불의한 재물이 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사용했다면, 예컨대 빈자보호법을 지켜서 수확하는 가운데 땅에 떨어진 이삭이나 밭모퉁이의 이삭을 자기를 위해서 거둬들여 사용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남김으로써 재물을 사용했다면 그 재물은 정당한 재물이 된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재물을 불의하게 획득했는지 아니면 정당하게 획득했는지에 따라, 또 재물을 불의하게 사용했는지 아니면 정당하게 사용했는지에 따라 불의한 재물이 될 수도 있고 정당한 재물이 될 수도 있다. 눅 16:10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재물을 정당하게 획득하고 또 정당하게 사용하는 자를 가리키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재물을 불의하게 획득하고 또 불의하게 사용하는 자를 가리킨다.

직전 본문인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에서, 청지기가 그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다가 이자 반환 또는 부채 탕감을 결행한 것은 재물의 획득과 재물의 사용 이 두 측면 모두에서 그 주인이 자행한 불의를 시정하는 행위였다. 그 결과 그 주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그 주인은 그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다고 칭찬한 것이다(8절). 비록 그 청지기는 그 동기의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해고된 후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주인의 평판을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악인에서 그 율법을 준수하는 의인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요컨대 불의한 재물은 무엇인가? 첫째, 불의한 재물은 '지극히 작은 것'이다. 그에 반해 영주할 처소는 큰 것이다. 따라서 큰 것(영주할 처소)을 포기하고 지극히 작은 것(불의한 재물)에 집착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반대로 지극히 작은 것(불의한 재물)을 버리고 큰 것(영주할 처소)을 얻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둘째, 불의한 재물은 '남의 것'이다. 곧 불의한 재물은 이웃의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이웃의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것으로 갖고 있는 재물이 바로 불의한 재물인 것이다.

셋째, 불의한 재물은 '거짓된 것'이다. 곧 불의한 재물은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불의한 재물을 쌓은 악인의 존재 자체가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재물은 사람에게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갖고 있으니 각성하고 주의하여 재물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은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재물이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모든 재물이 불의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재물을 불의하게 획득하거나 불의하게 사용할 때 그 재물은 불의한 재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재물을 불의하게 획득하거나 불의하게 사용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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