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평화 보단 예수님의 평화
  글쓴이 : 요셉토마스 날짜 : 21-02-28 23:43     조회 : 656    
사회 공의와 정의만 얘기한다면 강압으로 다스려도 가능할 수도 있다. 원래 정의란 언제나 양면성이 없다. 오직 하나이고 둘 다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표현할 때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표현이라면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상황에 따라 오해하고 잘못 받아들일 요지가 크다. 특히 양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 더욱 감정으로 대립되게 되고 이로인한 경쟁에서도 자유로울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의지 뒤에 숨겨진 인간의 마음이란게 그런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경찰보단 소방관이 낫고 소방관보다는 영감이 낫고 영감보다는 예수님이 낫다 뭘까? 평화에 대한 존재적 내공 능력 순 이라고 할까..ㅋ 평화란, 세상에서의 평화는 원하는 만큼 전쟁을 준비하면 생긴다고들 한다. 반면 우리가 아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평화는 세상에 있는 모든 갈등을 자신 안에 담아낼 때 생긴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 그 갈등을 다 십자가에 담아 내셨다.

그런 범위에서 우리 또한 세상과 교회에서 빛과 소금으로 피스메이커가 되기 위해선 다양한 갈등을 참고 담아 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아야 할 수도 있어야하나 이는 신자마다 통일된 의무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적용사례나 상황들이 다 다를 것이고 각자 믿음의 분량이 또 다를 것이며 또 각 인생의 때에 따라 지혜나 힘에 부치면 말씀 안으로 피해야 할 것이에 그렇다. 왜냐면 사람은 다 똑같은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르고 더 연약한 지체들이 있기에 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이런 표현이 인생과 사회의 다양한 상황에 맞춰 때에 따라 다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적용 가능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 흙탕물이라 해서 정화 시킨답시고 정의의 손을 넣어 휘저으면 더 더러워질 뿐인 상황들도 많이 생긴다고 본다. 이럴 때는 참는게 세상 지혜의 반이라고 하듯이 잠시 참고 걍두면 자연히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맑아진 윗물만 떠서 사용할 수 있게 되듯이 우리도 갈등이 있을 때 잠시 참고 숨고르기 하면서, 기도하고 인내하고 있으면 주님께서 때에 따라 말씀과 은혜로 교통 정리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의 존재적 최고 고수는 예수님이시고 그 담이 영감님, 그 담이 소방관, 그 담이 경찰관 순이 되는 것 같다. 이 순서대로 서로 평화를 위해 사람이나 사회를 대할 때도 각각 너무도 다른 태도와 행동들이 특징있게 나타낼테니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메시야 예수님은 그들의 선민사상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로 정의와 공의까지 완성하시며 그 모든 갈등을 십자가로 담아내셨던 것이다.

이렇게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 덕분에 갈등에서도 이제는 상대가 약자일 때는 더 더욱 마음을 배려하여 조심하지 않는 정의의 표현은 사랑이 없는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베이스로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은 분쟁의 씨앗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 나라는 다윗이 임하는 왕정 시대가 아니라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그분의 성품이 깃든 나라고 그러기 위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믿는 이가 다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물론 내 개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어째든 하나님 나라, 거기에는 주님 성품이 깃든 사랑으로, 평화가 있어야 예수님도 머리가 되시어 교회 위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정의나 공의가 없어야 할까? 아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시라고들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담긴 율법에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은 완전하고 완벽하다. 그래서 그 율법을 다 지키면 인간은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율법을 육신에 갇힌 인간은 연약해서 지킬수 없었고 해서 끝내 죄의 권능은 율법이 되었다. 죄는 아이러니하게도 율법이 있을 때 더 힘이 쎄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율법을 통해 죄를 더 깨닫고서는 결국 율법의 저주에 갇히게 되었다. 이렇게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인간의 그 율법의 저주를 푸시려 십자가에 달려 단번에 속제 제물이 되신 분이 메시야로 성육신하여 오신 우리 예수님이시다.

이러한 우리 예수님이 내 주인 되시도록 믿고 마음에 모셔 말씀 안에서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럼 주님은 모든 율법의 마침과 완성이시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에 담긴 정의와 공의, 사랑까지도 점점 성화되어가는 믿는 이들의 속 사람들에서도 자연히 나타나게 되리라 본다.

이게 맞다면 정의와 공의, 또한 사랑 등으로 균형잡힌 예수님의 성품이 깃들어 평화를 만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신교회 우파에서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정의와 공의, 또 좌파에서도 내미는 정의와 공의! 이로인해 생기는건 갈등과 분리, 대립 뿐이다.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예수님의 성품이 깃든 평화는 안 보인다고 생각된다. 실제 사례들을 얘기하면 잘 알겠지만 교회에 덕이 안되니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뭘까? 하나님께서 세상에 성경을 주신 첫째 목적은 예수님을 알게하고 믿음으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목적은 화목이라고 배웠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믿는 이들과 또 세상과 화목하는 바른 길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의 성품을 마음에 품고 평화의 왕인 예수님 만을 따르는 것이라 생각된다. 예수님 믿는 이들이 먼저 서로 평화롭게 화목했으면 정말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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