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의 희년 실천과 배상 회개 - 우리 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3-17 22:17     조회 : 78    
삭개오의 희년 실천과 배상 회개 - 우리 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리장 삭개오는 '부자'였다(눅 19:2).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희년 정신에 따라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배상하겠다고 고백했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처럼 그리스도인들부터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며 회개해야 한다. 한국 교회 안에서부터 이와 같은 대각성이 일어나 한국 사회의 대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서 파수꾼과 목자를 자처하는 자들부터 먼저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며 회개해야 한다.

1. 주(主) 예수

"주여 보시옵소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주'(主, 뀌리오스)라고 부른다(19:8). 그 직전 본문의 시각 장애인도 예수님을 '주'(主)라고 불렀다(18:41). 이 두 사람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선포하셨다(18:42, 19:9).

주(主)라는 고백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관계의 측면에서 예수님은 주(主)이시고 자신은 종(從)이라는 뜻이다. 둘째, 소유의 측면에서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의 소유주는 자신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주(主)라고 고백한다면, 자신은 예수님의 종(從)이므로 마땅히 자신의 주(主)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그 소유주이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희년 정신을 실천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엄중히 책망하시고 경고하셨다.

눅 6:46-49, "46.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49.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주(主)라고 부르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처럼 어리석은 자이다. 탁류가 부딪칠 때 그 집이 무너져 심하게 파괴될 것이다. 그 신앙은 한마디로 헛것이라는 뜻이다. 가짜라는 것이다. 헛된 믿음이요 가짜 믿음이니 결코 구원받는 믿음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주'(主, 뀌리오스)라고 부른 데 비해, 직전 본문의 부자 관리는 예수님을 '선생'(디다스깔로스)이라고 불렀다(18:18). 부자 관리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8:22)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주(主)로 대하지 않고, 선생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그 부자 관리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 데 대해,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우회적으로 예수님 자신이 주(主) 하나님이심을 가장 먼저 가르쳐주셨다(18:18-19). 그 이유는 예수님을 주(主) 하나님이 아닌 선생으로 대하는 한, 그 부자 관리는 예수님의 희년 실천 명령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가난한 자들을 위한 율법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삭개오는 왜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말했을까? 여기서 핵심은 ‘소유의 절반’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동안 자신이 외면하고 있었던 빈민을 위한 율법을 실천하기로 결단했다. 그런데 이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떠오르게 한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고백을 들으신 후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19:9)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그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그 비유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눅 16:29-31,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31.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여기서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16:29)라는 아브라함의 말은 한마디로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가난한 자들을 위한 율법을 지키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 비유의 문맥이 거지 나사로의 고난과 그 부자의 호의호식이기 때문이다(16:25).

그런데 그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은 빈민을 위한 율법이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16:31)이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이다. 곧 빈민을 위한 율법에 청종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순종하지 않는다(~A→~B). 이 말씀의 명제는 참이다. 따라서 대우 관계에 있는 명제 역시 참이다. 곧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면 빈민을 위한 율법도 청종한다(B→A).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자 빈민을 위한 율법을 실천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럼 그 빈민을 위한 율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들이었는가?

(1) 빈민을 위한 무이자 대부

출 22: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 빈민을 위한 안식년 부채 탕감

신 15:7-11,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3) 빈민을 위한 안식년 소출 환원

출 23: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4) 빈민을 위한 평년 잔여 소출 환원

레 19: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5) 빈민을 위한 토지 무르기 및 희년 토지 회복

레 25:24-28, “24.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28.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6) 빈민을 위한 주택 무르기 및 희년 주택 회복

레 25:31-33, “31.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와 같이 물러 주기도 할 것이요 희년에 돌려보내기도 할 것이니라 32.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들의 소유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 33.만일 레위 사람이 무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유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보낼지니.”

(7) 빈민을 위한 임시 주거 제공

레 25:31,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참고. 사 58:6-7,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7.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8) 빈민을 위한 속량 및 희년 자유 회복

레 25:47-54, “47.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48.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49.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그가 부유하게 되면 스스로 속량하되……54.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주(主)로 모시기로 결단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그 동안 자신이 외면하고 있었던 이와 같은 빈민을 위한 율법 규정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들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이 지금까지 지키지 못한 이 규정들을 한꺼번에 지키는 차원에서,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삭개오에게 예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곧 가난한 자들을 위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3. 배상과 속건제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자신이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말한다. 이 고백의 근거는 도둑질 관련 율법 규정이다.

출 22:1-4, "1.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4.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이 규정을 두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제1단계는 도둑질한 소나 양을 잡거나 팔아넘기지 않고, 살아서 도둑의 손에 그대로 두고 있는 경우로서, 도둑은 주인에게 두 배를 배상해야 한다(4절). 제2단계는 도둑질한 소나 양을 잡거나 팔아넘긴 단계로서, 이런 악질적인 증거인멸 행위 때문에 죄가 더 커져서 도둑은 주인에게 네다섯 배를 배상해야 한다(1절). 다만 여기서 양의 경우는 네 배, 소의 경우는 다섯 배로 한 것은 양보다 소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좀 더 가중 처벌을 받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도둑질에 대한 율법 규정은 레위기에 하나가 더 있다.

레 6:1-7,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3.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4.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5.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6.그는 또 그 속건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곧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고 갈 것이요 7.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여기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배상액은 출 22장의 두 배나 네다섯 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출 22장의 경우는 “2.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3.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출 22:2-3)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도둑이 도둑질을 하려는 적극적인 의도를 품고 주로 어두운 밤을 틈타 몰래 이웃의 우리를 뚫고 들어오는 경우인 데 비해, 레 6장의 경우는 그 고의성의 수준에서 정도가 덜 하고 좀 더 우발적인 경우이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삭개오가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한 것도 아니고, 두 배도 아니고, 바로 네 배를 갚겠다고 한 것은, ‘사취 강탈’(“속여 빼앗은 일”)을 율법에서 몰래 이웃의 우리를 뚫고 들어가 양을 도둑질하고 더 나아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그 양을 잡거나 팔아넘기는 것과 같은 수준의 중범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사취 강탈에 대해 율법은 단순히 배상으로 끝내지 않고, 속건제도 명하고 있다(레 6:6-7). 범죄자는 반드시 먼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해야 하고, 배상한 후에는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배상과 속건제를 모두 해야 하는 이유는 그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속건제 규정이 출 22장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율법의 통일성을 고려하면 출 22장의 도둑질 역시 레 6장에 나오는 도둑질의 경우처럼 속건제 적용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레 6장보다 출 22장의 도둑질이 그 죄질에서 훨씬 더 나쁜 중범죄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더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럼 삭개오의 고백에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네 배를 갚는 것으로 나오는데, 하나님께 대한 속건제는 어디에 있는가? 배상만 하고 속건제를 드리지 않으면 사취 강탈 범죄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나중에 삭개오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속건제를 드렸을 것이라고 얼핏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삭개오와 예수님 사이의 이 대화가 있고 난 직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그 누구도 ‘물건’(성전 제사 기구들)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심으로써(막 11:16) 성전의 제사 기능을 전면 정지시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하나님이 성전의 휘장을 찢으심으로써 성전을 철폐하셨다. 게다가 삭개오가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자신이 속여 빼앗은 피해자들에게 네 배를 갚는 일을 마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점을 감안하면, 예수님이 성전의 제사 기능을 전면 정지시키시기 전에 삭개오는 성전에 올라가서 속건제를 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삭개오의 속건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삭개오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속건제로 드리심으로써 하나님께 지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사 53:10-12, “10.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처럼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자신을 속건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신 것이다. 이런 심오한 의미가 부자 관리와 삭개오 이야기 사이에 있는 ‘수난과 부활 예고’ 본문에 함축되어 있다.

눅 18:31-34, “31.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 사건에 담긴 의미였다. 그 의미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부자 관리나 삭개오와 같은 부자들이 반(反)희년 체제에서 가난한 자들을 사취 강탈함으로써 자신들의 부를 쌓은 죄를 회개하고 피해자들에게 희년 정신을 실천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처럼 부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순종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사해 줄 것이라는 심오한 것이다.

4. 요약 및 적용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았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이 고백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구원을 선언하셨다.

눅 19:9-10,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손가락질 당하던 세리장 삭개오는 ‘잃어버린 자’였다. 그래서 더욱더 그는 예수님을 보기 원하였다.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볼 수 없게 되자 달려가서 돌무화과 나무에 오를 만큼 그는 간절히 예수님을 보기 원했다(19:3-4).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이 먼저 부르셨다. 그리고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수군거리는 모든 사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에 유하시며 식사를 함께 하셨다. 삭개오는 이처럼 자신과 같은 죄인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며,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회개의 실천을 결단한 것이다.

그럼 삭개오의 회개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속여 빼앗은 일”은 한국 사회에서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사취 강탈이 자행되고 있다. 지주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사취 강탈하고 있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사취 강탈하고 있다. 노동자는 지주와 자본가에게 이중으로 사취 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잘못된 영향 때문에 한국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자본가가 제일 힘이 센 악당인 줄 착각한다. 그러나 지주가 가장 힘이 센 악당이다.

예컨대 서울 강남의 한 건물에 월세를 든 대형 식당을 상정해 보자. 건물주가 있고 식당 주인이 있고 식당 종업원들이 있다. 이 중 식당 종업원들은 노동자이고, 식당 주인은 자본가 겸 노동자이지만, 관리 감독하는 노동자로서의 기여도에 비해 식당의 비싼 인테리어와 각종 설비를 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하였으므로 사실상 자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건물주는 지주 겸 자본가이지만, 자본가로서의 역할은 텅 빈 건물을 제공하는 데 그치므로 사실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목 좋은 강남에 위치해 있으니 토지 가치는 매우 비싼데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이 낡아감에 따라 건물분의 가치는 나날이 감소하지만 그 건물이 입지한 토지분의 가치는 인구 증가와 사회 발전에 따라 나날이 증가하기 때문에 이 건물주는 사실상 지주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럼 코비드 19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의해 이런 대형 식당은 어떻게 되었는가? 식당 매출이 급감했지만 건물주에게 월세는 그대로 지급해야 하고, 따라서 종업원들 일부를 해고하거나 월급을 삭감할 수밖에 없었으며, 식당주인의 수입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누가 제일 힘이 센가? 바로 건물주인 지주이다. 식당 주인인 자본가가 아니다. 사실상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은 공동 운명체로서 그 손실을 공동 부담하고 있는 데 반해, 건물주는 어떤 손실도 부담하지 않는다.

정치경제학적 진실의 본질은 자본가가 노동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이 둘이 하나로 묶여서 지주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노-자 대립)은 부수적인 것이고, 본질적인 것은 ‘노동·자본과 토지 사이의 대립’(노·자-토지 대립)인 것이다.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지주가 있고, 그 아래 자본가가 있으며, 맨 아래 노동자가 있는데, 지주는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 대한 포식자인 것이다. 이에 대해 헨리 조지가 명쾌하게 잘 밝혔다.

“노사 간에 버티기 투쟁을 할 때 ―― 버티기 방법은 어느 최저임금 이하로는 일하지 않겠다고 단결하여 임금을 올리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이해가 상반되는 진정한 당사자가 누구냐 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당사자는 노동과 자본이 아니다. 한 쪽 당사자는 노동이지만 다른 쪽은 토지소유자이다. 투쟁이 노동과 자본 간에 이루어진다면 두 당사자의 투쟁 조건은 어느 정도 대등하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이 버티는 힘은 노동보다 약간 더 강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용되지 않는 자본은 대가가 생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 가치가 자꾸 줄어든다. 거의 모든 형태의 자본은 재생산이 계속되어야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의 경우는 노동처럼 굶는 일도 없고 자본처럼 가치가 줄어드는 일도 없다. 토지소유자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물론 토지소유자도 불편을 겪기는 하겠지만 그들이 불편할 정도이면 자본은 파괴되고 노동자는 굶주리는 정도에 이른다.”(헨리 조지, 김윤상 옮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1998, 298-299쪽).

그런데 지주가 자본가와 노동자를 사취 강탈하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사취 강탈하는 이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는 바로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취 강탈하는 문제가 놓여 있다. 다시 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주와 자본가와 정규직 노동자로부터 삼중의 수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수탈은 바로 최하위층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누적적으로 집중된 사취 강탈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송경동 시인이 최근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 한국 사회가 민주화됐다고요? 비정규직이 1100만 명인 사회인데요? 이들은 미래 자체가 없고 2년에 한번 씩 잘리는 인생들이어서 피눈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과거보다 더 야만적이고 더 폭압적인 사회가 된 거예요.”(“투사 시인 송경동의 꿈”, <한겨레신문>, 2021년 3월 6일 등록).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사취 강탈하고 있고, 원청 기업은 하청 기업을 사취 강탈하고 있는 가운데, 한 기업 내에서는 임원들이 직원들을 사취 강탈하고 있고, 직원들 내에서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사취 강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참상은 교회와 신학대학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중대형 교회에서 담임 목사들이 부교역자들을 사취 강탈하고 있다. 담임목사들의 연봉이 부교역자들의 몇 배가 된다. 신학대학에서도 이사장과 총장과 정규직 교수들이 비정규직 강사들을 사취 강탈하고 있다. 이사장과 총장과 정규직 교수들의 연봉이 비정규직 강사들의 몇 배가 된다. 부교역자들과 비정규직 강사들이 생존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동안 그 대가로 중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들과 신학대학의 이사장과 총장과 정규직 교수들은 호의호식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온 중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들과 신학 대학의 이사장과 총장과 정규직 교수들은 삭개오처럼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부교역자들과 비정규직 강사들로부터 사취 강탈한 것은 불의한 사회 제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동참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최소한 사취 강탈 금액에 5분의 1을 더하여 배상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위해 속건 제물로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의지하여 지금까지 자신들이 범해온 사취 강탈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

이런 배상과 회개는 중소기업과 하청 기업을 사취 강탈한 대기업과 원청 기업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한 기업 내에서는 직원들을 사취 강탈한 임원들 안에서도 일어나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취 강탈한 정규직 노동자들 안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지주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사취 강탈한 죄를 배상하고 회개해야 하며, 자본가는 노동자를 사취 강탈한 죄를 배상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취 강탈한 죄를 배상하고 회개해야 한다.

삭개오처럼 그리스도인들부터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며 회개해야 한다. 한국 교회 안에서부터 이와 같은 대각성이 일어나 한국 사회의 대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서 파수꾼 곧 목자를 자처하는 자들부터 먼저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며 회개해야 한다.

사 56:10-12, “10.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탐욕스럽고 몰지각한 목자들이여, 너희가 언제까지 나사로를 외면한 부자처럼 너희만의 잔치를 벌이려 하느냐? 언제까지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 채 누워 잠자려고만 하느냐? 이제는 깨어 일어나라! 더 늦기 전에 깨어 일어나라!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고, 그에 합당하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그 동안 사기 강탈한 죄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며 하나님께 회개하라! 그것만이 너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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