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교회의 일치를...
  글쓴이 : 요셉토마스 날짜 : 21-03-23 14:18     조회 : 73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의 경제 활동을 초월해서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경제의 부만 추구해서 사는 것도 말이 안된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다면 사회 안에서 좀더 빈부의 격차를 합리적으로 줄이는 공평과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 등으로 진보를 이뤄야할 그리스도인의 숙제는 성숙된 신앙인으로 다들 마음에 어느 정도들은 있을 것이다.

보편적으로는 세상에서 살때는 은혜나 의리 등에 연연해 살아선 안된다고들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룰 속에서도 어떠한 대상에 속거나 굴종치않고 개인적인 독립성을 지켜내며 지혜롭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에서도 사업장에서도 그렇고 전반적인 사회 룰이 그렇다. 또한 우리가 함부로 보증이나 빚을 내주어 자신뿐 아니라 가족, 친척까지도 어렵게 만든 사람들을 주변이나 방송 등으로도 여러번 보아 왔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지만 또 다르다. 구별되어지기에 그렇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 믿는 이들끼리는 주님 은혜 안에서 형제 우애와 사랑 나눔 등에 더 연연하며 많은 신경을 더 써야할 것이다. 그것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또 따르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바보가 안되려면 현실적으로 세상에서는 조심성있게 때에 따라 이를 초월하듯 살아야 안전하지만 주안에서의 공동체 내에서는 또한 이를 내재시켜서 살아가기도 해야한다. 그렇다고 믿는 이들끼리 보증까지 서줘야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주 안에서 섬김과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 보아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가자는 것이다.

유한한 피조물인 존재이기에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살기란 진정 어렵지만 우리에겐 성령님이 계시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의 사건을 시작으로 이젠 각자에게 수호천사가 아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대신 간구하심까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영혼의 주인이 아님을 늘 상기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의지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실 초대교회의 모습들과 말씀들을 볼때 그리스도인은 공동체로 부름 받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이를 현대의 상황과 교회 안에서는 지켜가기란 사실상 보편적으로는 어려운 입장이라고 본다. 알다시피 현대의 거의 모든 성인들은 사회, 경제활동 등의 다양한 세상 속에서의 삶에서 이에 자유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대부분 포괄적으로 받아들이는 해석이 지배적이라고 본다. 물론 세상과 구별된 삶을 문자적 해석 그대로 받아들여 특별하게 극단적으로 결단을 실행, 실천으로 옮겨 하나님 안의 존재의 신앙가치에서 더 진보해 공동체 내의 생활로 형제우애와 사랑의 신앙관계를 더 잘 지키고 이어 갈 수도 있지만 현대의 입장에선 좀더 넓은 의미로 해석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있으나 구별된 의미로 해석되어지면서,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모습도 중요하기에 그렇다. 또한 도시화 진보화된 사회에서 점점 더 그 규모나 입장도 커졌기에 해석이 교회 공동체의 주기적인 모임과 다시 세상으로 흩어짐보다는 공동체의 집단 생활이 더 우선 되어진다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우선 시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주일에 교회에서 모임과 간혹 다른 봉사나 순모임등의 소공동체모임을 일주일에 한두번 가질 뿐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기는 어려워졌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에겐 세상과 구별된다는 것은 물과 기름에 빗댄 흔들어도 섞이지않는 그런 초월적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한 세상에서 내재된 모습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의 개 개인의 역할과 또 교회연합의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공적인 모습들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대한 역할은 세상에 약육강식의 논리와 부자 중심의 윤리나 빈부의 격차와 경쟁 등보다는 예수님께서 말씀 가운데 이끄시는 구원과 평화적인 소통 등이 얼마나 내재되어 있느냐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사회에서의 역할이 얼만큼 숙제로 녹아내렸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성을 그 사회에 내재시켰느냐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그 가치를 자본주의의 경제적인 가치로 해석해서 사람들을 수요와 공급의 불공정, 불평등과 구조적인 경쟁문화 등으로 인해 비인간화로 이끄는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궤계와는 다르게 예수님 은혜에 가장 가까운 진보한 평등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꺼라 생각한다.

그럼 이러한 최적의 길이 뭐냐하는 문제를 의식 속에 가져봐야 할 것이다. 어느 보수 교단에 속하는 교수분이 예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보수 정통과 자유 정통주의의 차이는 어디에 있느냐? 구원이 하늘에 있느냐? 땅에 있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 이분법적이다. 결국 정작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정작 어떤 정통 교단의 지도자분들은 그 표면적인 부분과 이면적인 부분에서 이질적인 모습들을 보이는 경우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판해서 덕이 안되니 굳이 자세히 할 필요는 없겠지만 실제로 여러 경제적인 혜택들을 무리하게 교회에 요구커나 또 욕심내시거나 그래서 누리면서 사시는 분들이 너무 있다고 본다. 정작 본인들은 모범이 안되면서 좌우의 균형도 없이 하늘의 구원만 바라며 이 땅의 삶은 고통이니 걍 참아 인내하고 말씀 가운데 기도하며 경건히 살아라하고 그럼 사방에 우겨쌓임을 당해도 어느 때가 되면 하늘에서 특별한 은혜가 있을 것이다하는 이런 말씀들을 많이 듣고 배우며 자라왔다. 그런데 이는 못배우거나 약한 소외계층의 약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특별한 사건일 뿐이다. 즉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공생애 기간에 하나님 나라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약자들 중심으로 당장 굶주리고 아픈 병자에게 배불리셨으며 나음을 얻게하셨는데 어느 한 것에 치중치 않으셨다고 본다. 그럼 우리도 어찌해야 강자가 독식하는 이 경쟁 위의 이 세상나라들에서 마치 섬같은 나라가 되어 공평과 낭만, 평등, 빈부의 격차가 줄고 주님의 은혜까지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 문제의 원인부터 먼저 알고 인정해가야 하는게 시작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경쟁과 비인간화의 근간은 바로 소유와 경쟁에서 오는 불평등과 불공정함인데 그 근원이 토지의 지대에 의한 불로소득이고 이로인해 저마다 투기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은 우익의 괴물이 아닌 이상 요즘 집단 지성의 화두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국가 자산의 85% 이상이 부동산 투기로 몰려 집중되어 있다는 결과도 있었었다. 세계 선진국의 가장 이상적인 부동산 투자 비율도 50%를 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불합리하고 모순된걸 다 아는데도 우리나라는 좌우 정파간의 경쟁과 정권 욕심 등으로 인해  언제 꺼져 버릴지도 모를 이 거품 위에 부동산 투기가 몰려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이는 우파의 기득권에 대한 욕심과 정쟁을 여론 몰이로 쓰고 있는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로 어느 종교 모임에서 5,60대 이상 집을 가지거나 어느 정도 재산을 소유한 남성 중에 진보라고 하면 천연 기념물이라고 까지 얘기하는 모습들을 쭉 보아왔었다. 또 본인이 보일러 일 관계로 지방의 여러 지역을 다니다보면 전라도쪽만 빼고는 보수쪽에 사활을 건 집주인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물론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농간과 궤계로 비인간화를 멈출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좀 늦추거나 바꾸고 또 주님의 진노도 긍휼로 바꿀 수는 있다고 본다. 그 시도는 좌우로 나뉜 기독교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연합하여서 대립을 풀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에 있는 경쟁과 불평등, 불공정함의 원인을 찾아 수습하고 조율하고 해결하고 보수, 유지하는 것일게다. 언젠가 논증해보야겠지만 가만보면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분열로 이 사회의 비인간화를 더 방치, 조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내 뇌리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이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그 이유의 원천은 뭘봐도 제한된 좁은 땅덩이로 인한 토지사유제가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해서  토지공개념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을 모아 일치를 이루고 지혜를 모으면 해결책은 분명 있을 수 밖에 없다. 불로소득인 토지 보유세를 결국은 아주 올리자는게 좌파의 이념도 아니고 또 이를 주장한 헨리 조지가 좌파의 괴수일 수도 없다. 이젠 자본주의를 더욱 자본주의화 시키자는 말처럼 우리도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이 확 꺼지기 전에 미리 미리 욕심을 먼저 내려두고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시기할 정도로 예수님 믿어 잘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이것이 우리나라의 사명일 것이다.

그 시작은 여야 정치가 먼저 평화적이고 초당적으로 합의해서 토지공개념제에 대한 위헌시비가 있는 헌법부터 좀더 고쳐 수정, 보완하며 일치해야 하지만 이 전에 우리나라 개신교단의  좌우진영들이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고 연합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 할 때 교회가 교회다워지며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그 역할이 충실히 충만히 이 사회와 정치, 법조계에까지 내재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그래서 주 안에서 일치된 교회가 이 사회에 큰 어른이 되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이 보여지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

주님. 이를 위해 좌우로 분열된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먼저 이때까지 좌우로 분열되어 나뉘어지고 또 더나아가 지교회별로까지 중심이되어 분열하여 달려오고 쌓아왔던 신앙의 전통과 지혜와 은혜들을 이젠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나누고 합력해서 일치를 이루게 하시어 이 사회를 주님이 이끄시는 평화와 번영으로 훌륭히 변화 시키게끔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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