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난한 과부" - 탄식인가, 탄복인가?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3-23 17:20     조회 : 633    
"이 가난한 과부" - 탄식인가, 탄복인가?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바친 후에, "이 가난한 과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바로 예수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선지자 안나처럼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섬기기로 결단했을 것이다.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밖에 남지 않은 자기 전 재산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두 가지 감정을 느끼셨을 것이다. 하나는 탄식이고 다른 하나는 탄복이다. 탄식은 그 가난한 과부에게 전 재산이 두 렙돈밖에 남지 않게 만든 불의한 강탈 체제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탄복은 그런 불의한 강탈 체제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을 승화시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려는 그녀의 헌신에 대한 것이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비판하셨다. 서기관들이 자행하고 있던 악행 가운데에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행위가 있었다.

눅 20:45-47, "45.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말씀은 바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다(45절). 따라서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같은 악행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직후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 그 가운데는 부자들도 있었고 가난한 과부도 있었다.

눅 21:1-2, "1.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한 렙돈은 은화(銀貨) 1/128 데나리온이다. 따라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두 렙돈'은 1/64 데나리온이다. 그런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따라서 두 렙돈은 약 천 원 정도의 금액에 해당한다. 이어서 예수님은 부자들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비교해서 말씀하셨다.

눅 21:3-4, "3.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4절에서 '생활비'로 번역된 '비오스'는 '생명', '재산'이라는 뜻이다. 두 렙돈은 그 가난한 과부에게 전 재산이었다. 곧 그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바친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모든 재산을 바치는 것은 곧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생명', '재산'을 뜻하는 '비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요컨대 이 가난한 과부는 전 재산을 바치면서 생명도 함께 바친 것이다.

그럼 이 과부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헌신을 결단한 것일까? 두 렙돈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차피 굶어죽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포자기를 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일까? 그러나 자포자기를 한 사람이라면 그냥 그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리지, 이 가난한 과부처럼 하나님께 최후의 헌금을 하고 죽지는 않는다. 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헌금하면서 과연 무엇을 마음에 품었던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가난한 과부"(3절)라는 표현이다. 예수님은 "'저' 가난한 과부"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 가난한 과부"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 과부가 헌금을 한 후에 예수님을 지나치지 않고 예수님 옆에 가까이 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부는 왜 예수님께 가까이 와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눅 19:47-48, "47.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47절),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48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성전에 온 백성들은 모두 날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었는데, 그 백성 가운데 바로 이 가난한 과부도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가난한 과부는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단에 갓 들어온 신입 단원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이 성전에 오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실 때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라는 예언서의 본문을 인용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들었을 수도 있다(눅 19:45-46). 혹은 직접 듣지는 못했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듣고 그 말씀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신 사건은 그 당시에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계셨던 예수님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유대의 지도층과 격돌한 일대사건이었으므로 그때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 이 가난한 과부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간접적으로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의 남은 전 재산을 헌금하고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결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때 그녀가 모범으로 삼은 사람은 아기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선지자 안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눅 2:36-38, "36.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이 가난한 과부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을 헌금한 후에, 선지자 안나처럼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예루살렘의 속량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 섬기기로 결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가난한 과부에게 전 재산이 두 렙돈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땅은 물론이고 집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땅이나 집의 가격은 두 렙돈보다는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 본문 직전에 서기관들이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눅 20:46-47), 이 가난한 과부는 불의하고 외식하는 서기관들에게 자신의 가산을 모두 빼앗긴 결과, 전 재산이 두 렙돈밖에 남지 않은 극빈층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가난한 과부는 서기관의 불의한 강탈과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절망이나 분노에 빠져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절망과 분노의 자리에서 일어나 비록 두 렙돈밖에 되지 않지만 자신의 남은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결단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불의한 강탈이 이스라엘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서기관과 같은 악인들이 하루속히 회개할 수 있도록,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을 심판해 주시도록, 그래서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더 나아가 성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가운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창조될 새 이스라엘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결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가난한 과부를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책임지라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유무상통의 코이노니아를 실천했다(행 2:42). 구체적으로 땅들과 집들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들을 팔아 사도들을 통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고, 그 결과 가난한 사람이 없게 되는 희년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이다(행 4:34-35). 그런데 그 대표적 수혜자들이 바로 과부들이었다는 사실을 초대 교회 안에서 발생한 최초의 분쟁 사례 곧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갈등 원인이 바로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소외되는 문제였다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다(행 6:1). 

요컨대 이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바친 후에, "이 가난한 과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바로 예수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선지자 안나처럼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섬기기로 결단했을 것이다.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밖에 남지 않은 자기 전 재산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두 가지 감정을 느끼셨을 것이다. 하나는 탄식이고 다른 하나는 탄복이다. 탄식은 그 가난한 과부에게 전 재산이 두 렙돈밖에 남지 않게 만든 불의한 강탈 체제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탄복은 그런 불의한 강탈 체제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을 승화시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려는 그녀의 헌신에 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그 과부와 같은 불의한 강탈 체제의 희생자에 대한 연민, 과부의 가산을 삼킨 서기관과 같은 악인들에 대한 의분을 느끼시며 탄식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바쳐 금식하며 기도하려는 그 과부의 거룩한 결단에 탄복하셨을 것이다.

그럼 이 본문을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네 가지이다.

첫째, 이 가난한 과부의 헌신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우리 헌신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당시에 과부는 소외된 자였다. 거기에 가난한 과부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도 전 재산이 두 렙돈 밖에 안 되는 극도로 가난한 과부라면 더욱 그러하다. 한마디로 이 가난한 과부는 소외된 자 중의 가장 소외된 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그녀보다 훨씬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우리는 더욱더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가난한 과부의 헌신은 우리 헌신의 모범인 것이다.

둘째, 오늘날 교회 안에 과부들의 가산을 삼킨 서기관들과 같은 악을 자행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즉시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고백처럼 "속여 빼앗은 일"에 대해 즉각 배상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강탈에는 개인적 강탈뿐만 아니라 구조적 강탈이 있다. 개인적 강탈은 인식하기 쉬우나 구조적 강탈은 인지하기 어렵다. 예컨대 건물주들이 그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전월세 가격의 폭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반면 세입자들은 피눈물을 흘려온 문제는, 가난한 세입자로부터 부유한 건물주에게로 부를 구조적으로 이전시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 구조적 강탈이다. 따라서 이런 구조적 강탈에 대해서도 회개하고 배상해야 마땅한 것이다. 

셋째,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이 가난한 과부와 같은 희생자들이 우리 시대에 생기지 않도록 불의한 구조적 강탈 체제를 혁파해야 한다. 현대판 '지주-소작' 제도인 '건물주-세입자'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토지평등권 개혁과 같은 희년 대개혁을 강력하게 실시해야 한다. 희년 실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제도적 희년'이고 다른 하나는 '자원적 희년'이다. 토지평등권 개혁은 '제도적 희년'에 해당되는데, 이런 사회 개혁을 통해 더 이상 이 가난한 과부와 같은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넷째, 한국 교회에서 이 가난한 과부와 같은 희생자들을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 이런 코이노니아는 '자원적 희년'에 해당되는데, 이런 교회 개혁을 통해 이 가난한 과부와 같은 불의한 강탈 체제의 희생자들이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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