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며”, “내쫓으시며” - 개혁자의 길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3-24 00:13     조회 : 594    
“우시며”, “내쫓으시며” - 개혁자의 길

“우시며”(눅 19:41), “내쫓으시며”(눅 19:45)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바로 사랑과 의분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자의 길이다.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눅 19:41-44,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우셨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이 보시고 우신 대상은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첫째,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은 자들의 성이다(눅 19:11, 27).

둘째,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파송하신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성이다(눅 13:34-35).

셋째,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죽일 자들의 성이다(눅 18:31-33).

그래서 예루살렘 파괴는 하나님의 징벌이다(눅 21:20-22).

곧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한 악인들의 성이다. 또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파송하신 예언자들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일 악인들의 성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파괴될 수밖에 없는 성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악한 예루살렘을 위해 우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인들을 위해 우신 것이 아니요, 불순종하는 악인들을 위해 우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눈물에는 지극한 사랑이 있다. 악인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예수님은 이 마음을 끝까지 품으셨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스데반도 자기를 돌로 쳐서 죽이는 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행 7:60,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바로 이것이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의 길을 걷는 개혁자가 배워야 할 자세이다. 이런 눈물을 가진 두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천덕 신부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에 쓴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City Jail)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방관하는 백인 교회를 위해, 더 나아가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고난을 무릅쓰는 흑인과 소수의 백인들을 배척하는 백인 교회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나는 앨라배마, 미시시피와 또한 그 외 다른 남부의 주를 샅샅이 돌아다녔습니다. 무더운 여름날과 상쾌한 가을 아침에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첨탑을 한 아름다운 교회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그 거대한 종교 교육 건물을 짓는 데 얼마나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하나님은 누구일까? 바네트 주지사가 (인종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용자) 외부 간섭과 연방법 실시를 거부한다고 침을 튀겨 가며 외쳤을 때, 그들은 무어라고 말했나? 워레스 주지사가 연방법을 무시하고 증오하는 선언을 했을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지치고 상처 받은 흑인 남녀가 어두운 자기 위안의 감옥에서 밝은 창조적 투쟁의 언덕으로 나아가려 할 때, 후원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질문이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깊은 실망 속에서 나는 교회의 타락에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나의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깊은 사랑이 없는 곳만큼 깊은 절망감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 옥중서한에서 불의한 백인 교회를 위해 흘린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는 그 사랑으로 미국 사회에서 비폭력 운동을 펼쳤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의 힘”(The Power of Nonviolence)이란 연설에서, 비폭력 운동의 핵심에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가 있다고 강조한다.

“신학자들은 아가페를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것은 어느 것도 보상받고자 하지 않는, 넘쳐흐르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런 수준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며, 단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이 행한 악한 행위는 증오하지만, 그 악을 행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랑을 베푸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아가페! 바로 이것이 우리가 남부로 가져가서 운동의 중심에 세우고자 하는 사랑의 실체인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대천덕 신부도 교회와 사회의 불의 앞에 눈물을 흘렸다. 대천덕 신부의 딸인 옌시 자매가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대천덕 신부의 눈물에 대해 물어보았다. 옌시 자매는 두 가지를 이야기해주었다. 하나는 자신이 11살 때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화가 나서 울면서 말했을 때, 대천덕 신부가 눈물을 흘리며 그 그리스도인들과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하고 함께 눈물로 기도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천덕 신부가 신문에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하고 가슴 아픈 사건들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옌시 자매와 또 다른 딸인 버니 자매가 “아버지, 또 우세요? 이제 신문은 그만 읽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브래드 롱(Brad Long)이 쓴 『대천덕 신부에게 배우는 영성』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대천덕 신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1년 10월이었다. 직감적으로 이번이 세상에서 갖는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와 대화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에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9·11 테러와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그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현재인 사모가 준비한 멋진 저녁을 먹으면서 세상의 불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대천덕 신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예수님이 울고 계셨다.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불의를 보며 울고 계셨다. 에덴동산 밖에서 일어나는 너무나도 비극적인 인간의 운명을 보시면서 우리와 함께 울고 계셨다. 나는 감격에 복받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 땅에서 나의 영적 아버지와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이것이 대천덕 신부를 통해 온 세상과 나를 위해 우시고, 온 세상과 나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와의 마지막 식사처럼 느껴졌다.

  대천덕 신부에게서, 진정한 영적 리더십은 힘에 관한 것이 아님을 배웠다. 또 기도나 비전이나 순종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리더십은 예수님의 사랑에 관한 것이며,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에 대해 죽는 것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를 통해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실과 능력을 경험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대천덕 신부는 모두 성령님의 사람이었다. 이 분들이 불의한 교회와 사회를 위해 흘린 눈물에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는데, 그 사랑은 성령님이 우리 성품에 맺어 주신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22에 의하면, 성령님의 열매 아홉 가지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사랑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만유의 왕으로 공식 취임하시고, 우리를 위해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존재와 소유를 바꾸어 주신다. 성령님에 의해 변화된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변화된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롬 8:14-17,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성령님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의 길을 걷는 가운데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처럼 우리의 존재와 소유를 바꾸어 주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도 바꾸어 주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서, 예수님처럼 악인들까지도 사랑하며 그 악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대천덕 신부처럼 불의한 교회와 사회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신다.

혹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약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으리라는 소망도 희미해진 사람이 있는가?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기도하자. 또 혹시 불의한 교회와 사회를 보면서, 분노와 냉소만 남고 눈물이 마른 사람이 있는가?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기도하자. 성령님은 기쁘게 오셔서 우리 내면에 다시 충만하게 임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우신 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다.

눅 19:45-46, “45.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행동은, 단순히 성전을 정화하신 차원을 넘어서, 예수님이 왕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여 공의를 실행하신 것을 뜻한다. 그리고 장차 예루살렘이 심판받아 그 불의한 거민이 내쫓길 것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행동에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시킨 자들의 악행에 대한 예수님의 의분이 담겨 있다.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의 길을 걷는 개혁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행동에서, 악인들의 악행에 대한 의분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개혁자들은 대개 공의에 민감하기 때문에, 의분을 갖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의분에서 멈추면 안 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위해 흘리신 눈물(눅 19:41)에서 악인들까지 품으시는 사랑도 배워야 한다. 시 119편의 시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시 119: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시인은 주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악인들의 악행을 보고 의분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시인은 의분에서 멈추지 않았다. 시인은 주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악인들을 보고,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시 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요컨대 악인들의 악행을 보는 시인의 마음에는 의분과 사랑이 모두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고, 개혁자들이 품어야 할 마음이다.

“우시며”(41절), “내쫓으시며”(45절)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을 품고 교회와 사회의 불의한 자들을 위해 울자! 그리고 의분을 품고 그 불의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폐단을 모두 없애고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개혁하자!

참고문헌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진정한 자유인 마틴 루터 킹의 절절한 육성. 채규철, 김태복 옮김. 서울: 예찬사, 2008.
브래드 롱. 대천덕 신부에게 배우는 영성 - 제자도와 영적 리더십에 관한 실천적 교훈들. 배성현 옮김. 서울: 요단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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