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의 소굴” - 두 가지 의미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3-24 18:28     조회 : 620    
“강도의 소굴” - 두 가지 의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곧 ‘종교적 강도들’이 강도질을 자행하는 곳이자 ‘사회적 강도들’이 자신의 강도질을 종교적으로 세탁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눅 19:45-46, “45.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다. 이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46절)라는 구절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신 것인데, 그 이사야 본문의 서두에서 정의가 먼저 강조된다.

사 56:1-7, “1.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2.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7.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곧 성전은 본래 이스라엘 사람이든 이방 사람이든 하나님의 백성이, 평소에 이웃에게 정의를 행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들어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인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성전은 불의가 횡행하는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장사하는 자들”(45절)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제사장의 허가를 받고, 제물로 쓰일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독점 상인들이었다. 그럼 왜 예수님이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는가? 그들이 성전에 제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에게 독점 가격으로 불의한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인 비둘기 한 쌍의 가격을 시중 가격의 다섯 배인 금화 한 데나리온에 파는 일도 있었다. 장사하는 자들은 이 불의한 이득을 대제사장과 나누어 가졌다.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는데, 제물에 흠이 있는지 여부를 제사장들이 검사했다. 제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이 비싼 독점 가격에 제물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독점 상인들에게 제물을 사지 않고 자기 제물을 직접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제사장들이 온갖 트집을 잡아 그 제물에 흠이 있다고 말하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날강도들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날강도 체제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유지하는 중심에 대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종교적 강도들이었다. 이 대제사장들과 그 일족은 부유한 종교 귀족(사제 귀족)이었는데, 이들은 제물용 가축 판매 외에도 성전금고 관리를 통해서 막대한 수입을 얻었다.

  “사제 귀족은 자산가 계층에 속하였다. (중략: 인용자) 전직 대사제이자 현직 대사제의 장인인 안나스가 살았던 집에는 (요한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는 체포된 후 맨 먼저 안나스의 집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넓은 뜰이 있었다. 그 집에는 문지기 하녀와 또 다른 하인들이 딸려있었다.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었던 안나스의 무덤은 그 지역을 굽어보는 커다란 묘지였음에 틀림없다. 그 후 예수가 끌려간 현직 대사제 가야파의 집은 산헤드린의 특별 회의소로 사용되었고 문루(門樓)가 달려 있었다. 가야파는 수많은 종들과 하녀들을 고용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대사제 가문들의 집에서는 사치가 극심하였다고 한다. 보에뚜스 대사제 가문 출신의 마르타는 버릇없이 자라났으므로 모든 사람이 맨발로 걸어가야 했던 대화해일에 자신의 남편인 가말리엘의 아들 여호수아가 집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부터 성전 문에 이르기까지 융단을 깔게 하였다고 한다.”(요아힘 예레미야스, 136-137쪽).

"그렇다면 대사제는 어디서 수입을 올렸을까? 평사제들의 가난한 상황과 대조되는 사제 귀족의 부유함이 우선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 다음 우리는 사제 귀족이 성전 금고에 매우 깊이 관여했고, 그의 후손들을 성전 금고 관리인의 지위에 임명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략: 인용자) 따라서 우리는 사제 귀족이 성전금고로부터 정규적인 수입을 올렸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요아힘 예레미야스, 138-139쪽).

“이 귀족들은 족벌문치에 의해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성전금전의 관리권까지도 장악하였다. 이러한 성전금전 관리권도 정치권력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아빠 샤울의 고소장에는 “그들의 아들들은 성전창고 책임자요” “그들의 하인들은 곤봉을 가지고 백성들을 구타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중략: 인용자) 실제로 신흥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었던 대부분의 가문들 즉 보에뚜스 가문과 안나스 가문과 피아비 가문은 거대한 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요아힘 예레미야스, 257쪽).

그런데 당시에 대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강도질을 하는 ‘종교적 강도들’이었다면, 성전 밖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강도질을 하는 ‘사회적 강도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자들이 바로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종교적 강도들’뿐만 아니라 ‘사회적 강도들’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 직후의 본문에서 ‘종교적 강도들’인 대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사회적 강도들’인 서기관들과 장로들(백성의 지도자들)까지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이다(눅 19:47). 왜냐하면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이라는 말씀으로 대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서기관들과 장로들까지 모두 ‘강도’라고 비판하셨기 때문이다. 그럼 ‘사회적 강도들’인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강도질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서기관들은 대부분 바리새파에 속했는데(눅 5: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 그들은 바리새파의 지도자들로서 토라(율법)를 기록하고 보존하고 해석하고 교육하는 엘리트들이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자들이었다(눅 20:47). 바로 이어지는 본문에서, 전 재산이 두 렙돈밖에 남지 않은 과부는 서기관들에게 가산을 강탈당한 과부일 가능성이 높다(눅 21:1-4).

곧 서기관들은 힘없고 가난한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는 사회적 강도질을 자행하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경건한 자라는 평판을 얻어 그 사회적 강도질을 지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종교사회적 권력을 계속 누리려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전은 서기관들과 같은 사회적 강도들이 들어와서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물을 드리고 또 제사를 드려, 자신들의 악행을 덮을 뿐만 아니라 나가서 악행을 계속 되풀이할 수 있도록 강화해 주는 장소였다.

다음으로 장로들은 대부분 부유한 세속 귀족(평민 귀족)으로서 산헤드린(공회) 의원이었으며 대지주들이었다. 대제사장들이 종교 귀족(사제 귀족)이었다면, 장로들은 세속 귀족(평민 귀족)이었다.

“산헤드린 의원이었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명망 있는 사람(euschemon)으로 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파피루스들은 그 표현이 분명히 부유한 지주를 의미한다고 가르쳐준다. 실제로 요셉은 부자였고 예루살렘 북쪽에 정원과 바위 속을 파내어 만든 가족묘를 가지고 있다. 그의 토지는 그의 고향에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토지가 가문의 소유로 된 것은 분명히 오래 되지 않은 일이었고 무덤은 새로 판 것이었기 때문이다.”(요아힘 예레미야스, 136쪽).

“이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문서는 로마에 대한 봉기가 발발했을 때 21년 동안 예루살렘에 생활필수품과 나무를 공급했던 세 명의 예루살렘 대상인에 대한 유명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는 이들이 “세 명의 부자”로 씌어 있기도 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명사들” 내지 “이 도시의 명사들”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고 “산헤드린 의원”으로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요아힘 예레미야스, 291쪽).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특권 가문들이 (이들이 성전에 자연의 소산물들을 공급하였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본래 대토지소유 가문들이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예수 시대의 부유한 가문들이 대부분 평민 귀족들이었다는 사실도 이와 부합한다. 미드라쉬에 나오는 “이 사람은 부자입니다. 우리는 그를 산헤드린의 의원으로 삼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은 로마 관리들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총독이 산헤드린의 “원로들”과 그 여타 가문들의 원로들 가운데서 세금징수관을 임명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때 비로소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세금징수관(Dekaposten)들은 유다가 로마에게 바쳐야 할 공세를 납세의무가 있는 시민들에게 할당하였으며 그 총액이 미달일 경우에는 자신의 돈으로 보충했다. 이 세금징수관들이 상당히 많은 재산―특히 에집트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특히 토지―을 요구하는 공적인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은 산헤드린 의원이었던 귀족 가문의 수장들이 부유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실제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나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예루살렘 대상인들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했던 것처럼 보인다.”(요아힘 예레미야스, 293-294쪽).

그런데 장로들이 이처럼 부유한 대지주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장로들의 가문이 희년 토지법을 어기고 가난한 사람들 몫의 땅을 그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채 대를 이어 축적하고 상속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장로들은 불법을 자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강탈함으로써 부유한 대지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장로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삼키는 사회적 강도질을 자행하면서, 그렇게 쌓은 부 가운데 얼마를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며 성전에서 헌금하고 제사했다. 그리고 성전은 장로들과 같은 사회적 강도들이 들어와서 헌금과 제사를 드리게 허용하고 대제사장들은 그들에게 축복함으로써, 그들의 악행을 덮어주고 나가서 그 악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처럼 성전은 대제사장들과 같은 종교적 강도들이 악을 자행하는 소굴이자, 서기관들이나 장로들과 같은 사회적 강도들이 들어와 성전 밖에서 자행한 악을 헌금과 제사로 덮고 또 나가서 악을 되풀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소굴로 전락해 버렸다. 한마디로 “강도의 소굴”(46절)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강도의 소굴’이란 표현은 예수님이 예레미야서에서 인용하신 것이다.

렘 7:9-11, “9.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서의 본문에서 “도둑의 소굴” 곧 ‘강도의 소굴’은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악행의 장소를 성전 밖과 성전 안으로 나누어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성전 밖에서,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온갖 악을 행하는 경우이다. 권력자들과 부자들도 사람인지라 악을 행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양심의 가책을 무마하면서 그 악행을 계속 되풀이하기 위해, 바알 숭배를 비롯한 온갖 우상 숭배를 하고도 모자라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까지 와서 제사를 드리면서 종교적이고 심리적인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나가서 악행을 되풀이한다. 이 경우 ‘강도의 소굴’은, 권력자들이나 부자들과 같은 사회적 강도들이 악을 행한 후에 들어와 잠시 머물러 쉬면서, 또 악행을 되풀이하러 나가기 전까지 숨는 소굴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 새 번역 성경이 ‘도둑들이 숨는 곳’이라고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악을 행하는 경우이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유는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성 안에서 의로운 사람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는 예레미야의 애가처럼(애 4:13), 제사장들은 예언자들과 함께 성 안에서 의인들을 죽이는 악을 행하였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렘 23:11)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제사장들은 예언자들과 함께, 성전 밖에서 저지르는 악으로도 모자라 성전 안에서까지 악을 자행하였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예언자들과 함께, 그들 스스로 악을 행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악을 행하는 권력자들이나 부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성전 안에서 제사와 예언으로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악행을 비호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불의하게 강탈한 재산 가운데 일부를 제사와 예언의 대가로 받거나 그 권력자들과 부자들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고, “너희는 안전하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계속 평안할 것이다.”라고 예언해주었다. 이로써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악행을 덮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가서 그 악행을 계속하도록 만들었다. 이 경우 ‘강도의 소굴’은 제사장이나 예언자와 같은 종교적 강도들이 악을 자행하는 소굴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은, 권력자들이나 부자들과 같은 사회적 강도들이 그 악행을 계속 되풀이하고 싶어서 종교적이고 심리적으로 재충전하기 위해 숨는 소굴이었다. 또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은, 제사장들이나 예언자들과 같은 종교적 강도들이 스스로 악을 행하는 소굴이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흘린 피가 묻은 불의한 이득을 권력자들과 부자들로부터 나눠받고 그들의 악행을 덮어줄 뿐만 아니라 나가서 그 악행을 계속하도록 제사를 드려주고 예언을 해주는 소굴이었다. 한마디로 성전은 사회적 강도들과 종교적 강도들의 활동 중심이었다. 사회적 불의와 종교적 불의가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빌로니아 군대를 통해 성전을 비롯하여 예루살렘을 파괴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신약 시대에도 비슷했던 것이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곧 ‘종교적 강도들’이 강도질을 자행하는 곳이자 ‘사회적 강도들’이 자신의 강도질을 종교적으로 세탁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회적 불의와 종교적 불의가 하나로 뒤섞인 채 성전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강도들은 자신들을 강도라고 비판한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눅 19:47, 20:1, 19). 그런데 이 강도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바로 산헤드린의 71명 의원들을 구성하는 3대 세력들이었다. 며칠 후에 그들은 예수님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앞장섰다.

결국 하나님은 유대 전쟁(기원후 66-73년)을 통해 예루살렘을 심판하셨다. 기원후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고 성전을 불태웠던 것이다. 원래 고대 전쟁의 불문율은 승리자들이 패배자들의 신전은 그대로 존속시키는 것인데, 이 유대 전쟁에서는 예외적으로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루살렘 공방전 과정에서 무려 11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살해당했다. 그 중에는 로마군에게 죽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예루살렘 함락 전에 로마군의 항복 권고를 받아들여 투항하려다가 열심당원들에게 죽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대 전쟁 기간 동안 9만 7천 명의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나머지 유대인들은 그 땅을 떠나 로마 제국 전역으로 흩어졌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전락시킨 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죽인 결과, 하나님이 경고하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말 4:5)이 이르고 만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사회적 불의와 종교적 불의가 하나로 뒤섞인 채 다수의 중대형 교회 안에 응축되어 있지는 않은가? 사회적 강도들과 종교적 강도들이 다수의 중대형 교회를 이미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리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오직 크고 두려운 심판뿐이다. 한국 교회를 생각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자문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참고문헌

요아힘 예레미야스.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옮김.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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