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되고 싶었던 한 의인의 죽음과 그 어머니의 고통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5-24 19:57     조회 : 409    

목사가 되고 싶었던 한 의인의 죽음과 그 어머니의 고통

나는 목사이다. 내 지인과 페친들 중에도 목사가 많다. 그런데 여기, 목사가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한 분이 또 있다. 박민환(1955-1980). 5·18민주유공자로서, 1980년 5월 21일 도청 앞에서 난사한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돌아가셨다(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묘역번호: 1-27).

1955년생이시니 나보다 15년 선배이시다. 이 분이 만약 목사가 되셨다면, 공수부대의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불의에 항거한 용기와 그 정의로운 성품,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돌본 그 자비로운 삶을 생각할 때, 부패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참으로 훌륭한 목회자가 되셨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남은 가족들의 고통이다. 큰 충격을 받아 울화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연좌제로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동생. 특히 그 어머니의 슬픔과 아픔은 결코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5·18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 무심하고 심지어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한 동료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아래 글을 타이핑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바로 5·18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 덕분이다. 1980년 5월이 있었기에 1987년 6월이 있을 수 있었다. 이 분들의 피와 눈물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도 군사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분들의 피와 눈물 앞에서 죄송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목사라면 설교를 통해 이 분들의 희생을 기리고 5·18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교인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마땅할 것이다. 교인들의 눈치나 보며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말을 설교단에서 하지 못하는 것은 목사로서 너무 비겁하고 무책임하지 않은가! 공수부대의 총구 앞에 맨 몸으로 섰던 이 분들의 용기를 본받아 그 용기의 100분의 1이라도 내어서 교인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가르치기 바란다. 그것이 한국 교회가 지금의 몰역사적 행태를 벗어나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사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 또래 아이들만 보면 가슴이 아파. 우리 아들도 저렇게 커서 목사님도 되고, 목사님 되야서 선교도 잘 하고, 없이 사는 많은 아이들 학비도 대줘서 공부도 무료로 갈쳐주고 했을 텐디.”(153쪽).

  “신학대에 진학해서 목사가 되고자 했던 박민환은 군대를 제대하고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온가족이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되면서 박민환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가 일수 돈을 끌어다가 장사를 해서 겨우 가족들의 끼니를 채우고 있는 곤궁한 상황에서 박민환은 우유배달과 신문배달로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중학교 과정의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153-154쪽).

  “가족들이 단칸방을 얻어 생활하던 방림동은 빈촌이었다. 그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박민환은 우유배달과 신문배달로 조금씩 돈을 모아 라면을 사다 놓고 그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라면을 끓여 먹이며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글눈이라도 뜰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154쪽).

  “박민환은 5·18민중항쟁 과정에서 가장 숨 가쁜 상황이 벌어진 5월 21일 이른 새벽,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박민환이 아침운동 나갔으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집을 나간 그날 저녁 박민환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154쪽).

  “다음날 동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박민환이 도청 앞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믿기지 않은 어머니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자, 박민환은 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 도청 앞으로 향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154-155쪽).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도청으로 가보았다. 도청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도청 안에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이 있다고 했으나 어머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도청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함께 간 동네 사람이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도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도청 안에 놓여 있는 시체들 속에 큰아들 박민환이 있었다. 뚜껑이 덮이지 않은 관 속에 눕혀져 있었다. 얼굴에 총을 맞아서인지 얼굴 아래 부분이 아예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155쪽).

  “어려워진 살림에 그토록 고통만 받고,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군대 가서 고생하고, 그놈이 세상에 신문배달하고 우유배달하면서 동네 불쌍한 얘들까지 데려와 공부도 갈치고 그런 아들이 그렇게 돼부렀어.”(155쪽).

  “사업에 실패하고 객지로만 떠돌던 남편마저 아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울화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머니는 가슴에 묻힌 아들의 죽음을 보듬고 처지가 비슷한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유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자신보다 더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아 서로 위안이 되기도 했다.”(155-156쪽).

  “그러나 어머니 장말례 씨는 그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딸 넷에 아들 둘을 낳았지만 딸 하나는 병으로 먼저 보내고 딸 넷을 낳고서야 얻은 큰 아들을 그렇게 보낸 후 남편마저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생계는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156쪽).

  “혼자 공부해서 검정고시 합격하고 불쌍한 다른 아이들까지 가르치던 박민환을 동네 사람들은 천재라고 불렀고, 군대에 갔다와서는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돈을 벌어 한 달에 한두 번 고기를 사와 가족들을 살피던 박민환이었기에 남은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156쪽).

“더구나 막내아들은 형이 5·18민중항쟁 과정에서 죽었다는 이유 때문에 직업군인으로서 많은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형을 원망하지 않았다.”(156쪽).

  “처음 유족회에 나가서 함께 데모하고 그럴 때만 해도 어떻게든 우리 아들 죽인 놈들에게 복수라도 해야 원이 풀릴 것 같던 어머니는 이후 종교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떠난 아들이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는 하나님의 품에 안식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살아서 고생만 시켰지만 제 스스로 좋은 일 많이 하다가 갔으니 하나님도 그 아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실 것으로 믿는다.”(156-157쪽).

참고문헌: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5·18기념재단 엮음, 『죽음으로 쓴 5·18민중항쟁 증언록 1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광주: 한얼미디어, 2006).

사진: 박민환(1955-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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