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의 첫 희생자 - 한 장애인 그리스도인의 죽음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5-27 02:27     조회 : 386    

1980년 5월 광주의 첫 희생자 - 한 장애인 그리스도인의 죽음

5.18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중 광주에서 공수부대에게 처음으로 살해당한 사람은 장애인이자 그리스도인이었다. 김경철(金敬喆: 1952-1980). 그는 청각·언어장애인으로 광주농아협회 관리부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남광교회 교인이었다(최상도, “5·18과 광주지역 교회의 활동”, <제41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세미나 - 5·18과 광주지역 교회의 활동 및 문용동 전도사> 자료집(전남노회 문화선교위원회·광주제일교회 광주교회사연구소,  2021년 5월 13일), 17쪽; 한규무, “최상도 「5·18과 광주지역 교회의 활동」에 대한 토론문”, 같은 자료집, 52쪽).

그의 성품은 착했다. “다행히 아들은 착하게 잘 자라주었다. 다른 공부보다는 기술을 익혀주는 게 아들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화기술을 가르쳤다.”(17쪽).

그는 제화 노동자가 되어 성실하게 일했다. “서울에 올라가 양화점에 취직해 열심히 기술을 익히고 능력도 키웠다. 그리고는 광주에 내려와 같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17-18쪽).

그리고 스물여덟 살이 되는 1979년에 같은 장애를 안고 있는 여성과 결혼하여 1980년 초에 예쁜 딸을 낳았다. 그는 화목한 가정의 자상한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또한 그는 친구들에게도 다정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살아생전에 경철 씨는 먼지 한 켜라도 깨끗이 털어낼 만큼 정갈하고 깔끔했다. 그리고 다정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도. 그런 탓에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을 읽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22쪽).

그러나 1980년 5월 18일, 금남로에서 그는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공수부대에게 붙들렸다. 그리고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이튿날 새벽에 사망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에게 희생된 최초 사망자였다(국립5·18민주묘지, 묘역번호 1-01).

  “광주의 첫 희생자는 시위대도 학생도 아니었다. 장애인 김경철 씨였다. 들을 수 없고 말도 잘 하지 못하는 그의 죽음은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려왔다는 계엄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경철 씨는 딸 혜정이의 백일잔치를 치른 며칠 뒤인 5월 18일에 가족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집에 왔던 처남이 영암에 간다기에 데려다주러 나갔다가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금남로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공수부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무조건 달려들어 몽둥이를 내리쳤다. 친구들은 도망쳤지만, 경철 씨는 들리지 않은 탓에 낌새를 몰랐고 공수부대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말할 수 없으니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학생도 아니고 데모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들을 수 없으니 그들이 요구하는 지시를 따를 수도 없었다. 가지고 다니던 신분증을 보여주며 자신은 청각장애인이라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매뿐이었다. 그는 나동그라지면서도 빌었다. 그들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애원하며 맞았다. 대답하지 않는다고 때리고, 벙어리(장애인을 비하하는 잘못된 표현이므로 '언어장애인'으로 교정해야 함: 인용자) 흉내를 내며 장난한다고 후려치고, 번호를 붙이지 않는다고 군홧발로 짓이겼다.

  처절한 광경이었다. 벙어리(장애인에 대한 비하 표현이므로 '언어장애인'으로 교정해야 함: 인용자), 귀머거리(장애인에 대한 비하 표현이므로 '청각장애인'으로 교정해야 함: 인용자)로 힘들게 살았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키워가며 살아가던 한 젊은이요, 한 아버지가 폭력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은 병원으로 실려 가던 차 안에서조차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말을 하라며, 대답을 하라며 매질을 했다.

  뒤에 광주지방검찰청과 군 당국이 합동으로 작성한 김경철 씨 사망자 검시서에는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 놔안상 검부열사, 우측 상지전박부 타박상, 좌견갑부 관절부 타박상, 진경골부·둔부 및 대퇴부 타박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랬다. 뒤통수가 깨지고, 눈이 터지고, 팔과 어깨가 부서졌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졌다.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금방 숨을 거두고 말았다.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는지, 그날 적십자병원의 진료비 청구서에는 2,100원이 적혀 있었다.”(18-19쪽).

  “옷을 입히려고 시신을 덮고 있는 흰 천을 걷었을 때 어머니는 경악했다. 비로소 아들의 몸이 얼마나 처참히 찢기고 깨져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멀쩡한 곳이 없었다. 군화발에 밟혀 발가락마저 으깨져 있었다. 차라리 총에라도 맞았으면 고통의 시간이 덜했을 텐데, 죽는 순간까지 매를 맞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들이 더욱 애처로웠다.”(20쪽).

  “며느리는 집에 돌아와 구석에서 울기만 했다. 백일 지난 아이가 젖 달라고 우는데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 식구 같이 죽을 것이라며, 자신도 먹지 않고 아이에게도 젖을 물려주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달래도 듣지 않았다. 얼마 후 그녀는 결국 젖먹이를 떼어놓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경철 씨의 딸 혜정이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랐다. 어린 손녀가 엄마를 찾으며 보챌 때는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할머니에게 손녀는 아픔 그 자체였다. 어린 손녀를 끌어안고 많이도 울었다. 남편이 떠났을 때도 아들 보낸 서러움만큼 크지는 않았다.”(20-21쪽).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의 어머니와 딸이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새긴 것인데, 아들과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가슴 아픈 그리움이 배여 있다.

  “엄마와 못 다한 정에 울고 있을 나의 아들아! 한보다 더 짙게 새겨진 그리움을 뉘게 말할 소냐! 내 생이 끝나는 그날, 자랑스러운 네 모습 볼 수 있을 날 기다린다. - 에미가

  아빠! 늘 어디서든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은 있지만 가슴 저미게 뵙고 싶을 때가 많아요. 단 한번이라도 아빠 얼굴보고 아빠를 불러보고 싶은 이 소망 아실는지. -딸 혜정이가.”

그는 성품이 선하고 다정하며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사랑받는 아들이었으며 아내와 딸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또한 그는 장애인이자 그리스도인이었다. 들을 수 없었고 말할 수 없었던 그가 그 잔인무도한 공수부대의 계속되는 무차별 구타로 죽어가는 장면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그 공수부대와 전두환 일당에 대한 분노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내가 이럴진대 그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자녀로 사랑하시되, 특히 장애인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신다. 그런 귀중한 하나님의 아들이 무자비한 공수부대원들에게 맞아 죽어갈 때, 하나님은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또한 그 공수부대와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전두환 일당에게 진노하셨을 것이다.

지금까지 전두환 일당이 그처럼 뻔뻔하게 5.18의 진실을 왜곡하면서 전혀 반성하지 않고 5.18희생자(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 구속자, 고문 피해자, 성폭행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이 그들을 지옥 불에 던져 넣으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악인들을 너무 쉽게 사면해 주었다.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이 시행한 '진실-사면' 모델을 따른다고 한다면 제대로 따랐어야 한다. 전두환 일당을 사면하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의 진실(시민에 대한 잔인한 공격과 발포 명령, 헬기 사격 명령 등)을 모두 고백하게 하고 5.18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게 하는 절차를 밟은 후에 사면했어야 한다. 이 부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명백히 잘못한 것이다.

공수부대와 전두환 일당은 자기들이 그처럼 잔인하게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살해당한 후에 그의 가족이 수십 년 세월 동안 어떤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 선한 사람을 살해하고 그의 화목한 가정을 파괴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그처럼 악독하게 죽이고, 그의 단란했던 가정을 짓밟았다!

나는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희생자들과 그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공의로운 진노의 심판을 내려주시기를 바란다.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지옥 불에 던지시고 영원한 형벌을 내려 주시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5·18기념재단 엮음, 『죽음으로 쓴 5·18민중항쟁 증언록 1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광주: 한얼미디어, 2006).

사진: 김경철(1952-1980).
사진 출처: 국립5·18민주묘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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