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복음과 율법 그리고 헬조선
  글쓴이 : 박야곱 날짜 : 21-06-17 18:52     조회 : 357    
글을 쓰고나서도 여러 고민이 많았다. 부담되는 것은 수정도 하려 했었고, 그러던중 잠시 비몽사몽 중 환상 가운데 주의 청년인지 천사인지 흰 세마포옷을 입고 앉아 절망 가운데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얼굴에 괴로움이 많아 심히 일그러져 있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 땅의 주의 청년이든 하늘의 천사든 상한 마음으로 절망한채 쭈구려 앉아 있다니 이에 나도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싶어 기도 중 다시 글을 올리기로 결단한다.

주여~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를 결론 짓는 것은 다름이오니 이를 구별하며 행케하소서.                                       

☆성경의 율법과 복음, 행위와 은혜언약의 상관관계- 사실 이는 그 생각할 분량도 많고 쉽게 다룰 문제가 아니기에 접근하고 싶지가 않은 주제였다. 더군다나 이를 아는 것과 결론 짓는 것은 다르기에 그렇다. 허나 주께서 이끄시니 주님의 것인 나 또한 순종의 마음으로 붙들게 되었다. 다만 연약하며 피조물된 인간인지라 이 글을 쓰고 올린 후에도 미비하다 여기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에 쓰고 나서도 틈틈이 새롭게 수정하거나 편집을 할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 두는 바이다.

옛 언약이라 할 수 있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바로에게서 탈출시킨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직접 돌판에 문자를 새긴 행위언약이라는 율법을 나타내셨다(출20:1-17,신5:1-21). 이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대를 이어온 약속의 자손들이다. 애굽에서 탈출시킨 하나님께 선택받은 약속의 백성들이기에(신7:6-8) 옛 언약의 증표인 돌판 위에 직접 새긴 십계명으로(출20장,신5장) 당신의 성품을 계시하셨다. 이렇게 택하신 이스라엘에게(신7:6-8) 문자 언약인 십계명을 시작으로 하나님께서는 점진적으로 613가지의 율법을 알려주시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계시하셨다.

이 계시된 율법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이 거룩하고 선한 율법(롬7:14,16)을 다 지키면 인간은 누구든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율법은 육체에 갇힌채 죄에게 미혹을 받고 있으며(롬7:17-18)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죄의 성향(롬7:20-21)을 갖고 있는 하나님 앞에 부족한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이대로 지켜서 살기엔 실로 너무 어려운 법이었다(롬7:23-24).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게 된 것이다(갈2:16).

해서 율법이 있으매, 율법을 통해 죄를 알게 되고(롬3:20,5:13,7:7) 그 죄의 대가로 징계와 회개, 그리고 용서라는 순환론적인 룰의 일정한 방향성들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속에 늘 있어 왔다. 그리고 이스라엘 북과 남 두 왕조의 멸망, 먼저 북이스라엘이 망하고(BC722) 남이스라엘 마저도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 상황과 형편에 따라 포로된 백성들이 흩어져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다  일부는 남기도하고 또 나머진 다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며 이스라엘의 재건에 힘쓰다가 그리스나 로마에 의해 역사 속에서 여러 박해를 받으며 창조주께 선택된 민족이라 생각하기엔 이상하리만치 역경과 고난의 행보가 이어져 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엡1:11,계4:11)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며(갈3:10,22) 반작용으로 예언된 메시야에 대한(사53:1-12) 현실적인 필요와 갈망일 것이다(갈3:23,4:4-5). 때문에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율법은 죄를 깨닫게하는 역할(롬3:20,5:13,7:7)로 굳어질 정도로 사람들에게는 준엄한 죄의 권능(고전15:56)의 역할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렇게 구원을 얻는데서는 몽학선생(갈3:24), 세상 초등학문(갈4:3)으로까지 비하되는 이 율법의 또 다른 이면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신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여겨진다(롬7:12). 이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들과 싫어하시는 것들을 담아놓아 이를 써서 잘 간직하여 보고 읽고 지키도록 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담긴 행위언약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자언약을 보고 잘 지켜 행하면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전능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 구약 역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율법이 있으므로 해서 복음(고전15:3-4)이 간절히 요구되어지고 있는 바(롬3:19-25), 그러므로 복음이 가는 곳엔 율법도 늘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롬3:31). 그 이유는 사도 바울도 율법을 지적하듯이 죄를 깨닫게하는 역할(롬3:20)로 진노를 이루게(롬4:15) 하기에 그러하지만 또 구원받아 죄와 사망과 악의 권세 에게서 자유케 된 자는, 이후 재차 설명하겠지만 도리어 그 율법을 굳게 세우기에 그러하다(롬3:31).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은 원죄가 유전되어 이스라엘로 죄를 깨달아(롬3:20,5:13,7:7) 사망과 심판 안에 갇힌 바되어(롬3:19,7:10) 이 죄와 사망의 법에 갇힌(갈3:22) 이스라엘로 약속된 메시야를 통한 구원(사53장)이라는 절실한 동기부여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은혜언약으로 이어지는 핵심 사건들이 약 2000여년 전에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 죽음 사건(사53:6,고후 5:21,갈3:13,히9:28,벧전2:24), 또 몸의 부활(마28:7,막16:6,고전15:4)과 승천(막16:19,눅24:51),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임재사건(행2:1-13). 이렇게 말씀이신 창조주 예수님(요1:1-3)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직접 오셔서 율법을 완성시키시고 완전케하셨다(마5:17,롬10:4). 물론 우리는 타임머신이 없기에 이 과거로 돌아가 그 역사적 사건들을 증명할 길은 없다. 다만 허다한 증인들이(고전15:5-11) 있었고 또 구약의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된 말씀들이 밝히 드러났기에 믿고 증거할 뿐이다. 물론 이 또한 창조주 하나님 만의 절대주권과 작정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일이다(롬8:38-39,11:36,엡1:11).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내 마음에 영접만 하게되면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주셨다(요1:12). 이것이 계시된 구약의 옛 언약인 행위언약에서, 신약으로 예언된 새 언약이(렘31:31-33) 되는 은혜언약 시대로 접어든 사건들이었다.

그렇지만 좀 전에 말했듯이 율법은 그걸로 그 소임을 다한 것은 또 아니었다. 이렇게 복음이(시간-고전15:3-4,상황-요1:12.둘다포함) 온 이후에도 율법은 없어지게 되고 그 소임을 다해 폐하여지지가 않았다(롬3:31). 존 칼빈의 표현처럼 구원의 서정을 9단계(소명-중생-회개-믿음-칭의-수양-성화-성도의견인-영화) 정도로 나누어 놓고 볼 때, 사실 칼빈을 예로 안들어도 성경의 1차목적은 구원이라면 2차목적은 성화에 의한 화목, 화평이다.

이 때 구원받은 신자가 성화의 단계에서는 율법이 우리 마음의 행복의 지침(렘31:33,약1:21) 또는 죄의 권능(고전15:56)으로 다시 역사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은 복음의 그림자라 할 수도 있다. 복음으로 이신칭의된(롬1:17,갈2:16,요일5:4-5) 그리스도인에게 칭의까지는 죄책이 역사하며 이 때의 율법은 오히려 창조주의 진노를 이루게 하며(롬4:15) 사망으로 이끌어 죄를 더 죄되게(롬7:13)하여  모든 사람으로 죄에 갇혀 빠져나올 수가 없게 만든다(롬5:12갈3:10). 그래서 도저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롬5:18,히7:27,9:26,10:10-14) 없이는 이 사망권세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게 만든 것이다(고전15:55-56). 그러기에 구약의 옛 언약인 율법의 역할은 복음으로의 안내자(갈3:24)가 될 뿐이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롬1:17,갈2:16) 칭의에서는 은혜언약인 예수의 피로 세운 새 언약(렘31:31-33,고전11:25)만이 구원으로 역사하게 되었다(고전15:57).

이쯤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고전15:3,갈2:20)과 부활(고전15:4-8,고후6:16-18)을 믿음으로 경험한다면 거룩을 덧입은 성령의 전(고전6:19,고후6:16)이 되어 신비하게도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게 된다(요1:14,갈3:2). 이 때 다시 우리 안에 있는 이기심의 본성과 악이(롬7:21) 육체의 욕심과 이를 무기로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게 하여(갈5:17) 우리 안의 이기적 본성의 미혹됨이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역사를 하게 만든다(약1:12-15).

이를 종합해보면 루시퍼나 사단 보다는 구원받은 상황에서도 점진적으로 성화되어가는 과정 중에서는 오히려 우리의 본성인 이기적인 마음이 더 악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사탄, 악한 천사들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자녀 됨을 덧입은 우리가(요1:12,갈4:4-7) 히1:14처럼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준 선한 천사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해 물리치거나 또는 성도가 근신하고 깨어 저를 대적할 수 있는 권세(엡6:4,약4:7,벧전5:9)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롬1:17,갈2:16) 성화되어가며 하나님의 자녀(요1:12)가 되었어도, 이 땅 위에서 살아갈 때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 지닌 이기심(롬7:21)과 염려(눅21:34,벧전5:7), 교만(고전4:6-21)은 성도가 항상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악이라 할 수가 있겠다.

그래서 이에 대한 불분명한 해석들과 오해들로 실족커나 예수님을 떠나는 신자들도 있는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화 되어가는 중에도 이에 따르는 복음 안에서의 반복된 회심이 있을 수가 있고 이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롬5:18,히7:27,9:26,10:10-14) 반복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어떤 성도라도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났더라도 전심으로 회개하면 다시 부름받는 또 이것이 반복, 가능해지기 까지하는 사건이 있을 수 있게 된다.  (눅22:32,계2:5,16,21,22.3:3,19). 따라서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본성으로 생기는 이기심과 염려, 교만 등에 치우쳐 속는 것을 막아주고 의로 교육하여 온전케되기에 유익하다(딤후3:16-17). 이 성경은 우리가 성전이며 성령의 전임을(고전2:12,3:16,6:19,고후6:16) 또한 얘기하며 이를 더럽히지 않게 거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롬8:1-13,고전3:17).

그래서 우리가 성화되는 이 때의 율법의 역할은 크게 두가지로 달라지게 된다. 이전에 몽학선생으로의 율법은 구원을 얻는데는 안내자로서만 필요로 했었지만(갈3:24), 이제 새 언약 시대의(렘31:31-33,고전11:25) 율법은 구원 받은 자들의 성화에서 직접적인 도움의 역할이(약1:21,2:8) 되거나 아니면 범죄를 묻고 따지는(약2:9,11,고전3:16-17,마12:31-32) 죄의 권능의 역할(고전15:56)이 되어지는 것이다. 구원받기 이전에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같은 율법(갈3:24)이었다면 이제 우리 구원받은 이에게 있어서의 율법은 다시 성화되는 여정에서는 오히려 행복의 지침이(약1:25)되거나 죄의 권능(고전15:56)이 된다고 할 수가 있게 되어진 것이다. 즉, 이신칭의는 개 개인의 죄책의 한계에 의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의롭다함을 얻는 것을(롬1:17,갈2:16) 일생에 단 한번만 다룬다면, 수양과 성화의 단계에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행복의 지침이되거나 또는 마음이나 심령 안에 죄의 권능이 되어 역사를 하게 된다.

이 율법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는 성도들의 일평생 동안 함께 복음의 그림자처럼 붙어서 따라다니며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마5:17-48,요일3:22-24,롬13:8-10,약1:25,2:8). 이는 로마서 4장(갈3:1-12포함)과 야고보서 2장의 아브라함을 예로든 저자들의 의도를 비교하면서도 더 심도있게 깨닫게 될 수가 있다. 로마서 4장과 갈라디아서3장1-12의 아브라함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될 때의 믿음을(창17:1-27) 예로들어 말했기에 일생에 한번 일어나는 이신칭의의 죄책을 다루었다면, 야고보서 2장의 칭의관은 아브라함은 이미 이전에 하나님께 부름받아 3,40년간 연단이 되고 그 만큼 신앙이 성장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원받고 주시기로한 복도 저가 오래 참고 기다려서 받을 복을 누려 왔었다(히6:13-15). 또 나이들어 선물로 받은 약속의 자녀인 자식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에 신앙으로 깨어 순종하게 되는 행함의 아브라함을 예로 든 것이다(창22:1-18). 이때의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할 때의 야고보서의 칭의관은 성화의 단계에서의 칭의관이기에 그 해석을 달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가 다양하더라도 복음과 율법의  상관관계 즉, 구원과 성화의 서정 등으로 통일성있게 봐도 끊어지지 않고 서로 연관되며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의 말처럼 야고보서가 죽은 서신이 아니고 저자 야고보 당시에 시대상으로 신실한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쓰여진 목적도 있다지만 이미 믿음으로 의롭게된 신자가 점진적으로 성화 되어가면서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제 1,2계명의 실천을 나타낸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칭의 후에 성화되어 가면서도 율법으로는 늘 이웃이 아닌(율법주의는 신자가 경계해야 할 악이다.롬9:31-32,10:1-3,고전2:10-16,약4:11-12) 성령의 인도로 자신을 비춰봐야 한다는 것이다(롬8:1-17,히3:7-19,요일3:23-24).

이 때 율법은 613개의 개별 계명들이 따로있는 것이 아닌 각각의 계명들에 통일성을 가지게 되는데(마22:37-40) 이것을 이루는 근본 계명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이다(눅10:25-28,약2장,롬13:8-10). 예를 들어 어떤 사람 누군가가 이 땅 위에서 오랜 신앙의 연단으로 성화되었다 하더라도 이웃이나 고아나 과부 등의 약자를 사랑치않고 그들을 이타적인 신앙으로 돌아보지 않는다면, 또는 다 잘하고 있지만 나그네나 어느 한 약한 이웃에 대해서는 율법을 가지고 비방, 정죄(약4:11)까지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죄를 짓는 것이며 죄의 권능인 율법이 그 사람의 마음을 침노해 범죄자로 돌아가게끔 역사를 할 것이다(약2:9).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을 이루게 할 것이 또한 자명한 일 인 것이다(약2:13,4:12). 물론 이 또한 전 존재적인 진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뢰해 회개를 한다면 용서된다(눅22:32,계2:5,16,21,22.3:3,19). 이 때에 당연 하나님께서는 그 진정성있는 회개에 합당한 순종의 열매를 성령의 감동으로 그의 마음에 역사함은(약1:21)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때에 지나간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이 시대의 요구성 안에서 필요를 깨달아 외쳐본다. 현 시대 교회나 공동체 내에서 특히 목사공부를 했다해서 자유신학이나 보수신학으로 공동체에 분열을 주거나 화평케하는 직분을 망각하며 이에 성령님 보시기에 교만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신학을 배운자로서의 직무인 공동체나 교회를 섬김과 사랑으로 본을 보여야하는 직무를 유기한 것이 된다. 이는 분명 성경과 성령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즉 1,2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실천적으로도 안 나타날 것이기에 그렇다(요일3:23-24). 그 의지 뒤에 숨겨진 자아의 미궁한 영역에 심판이 있을찌니(고전3:16-17) 부활과 내세신앙(고전15:12-58)이 없거나 사회정의만 외친다면, 또는 그들에게 사랑이나 섬김과 화평케하는 본이 안보이고 왕처럼 군림만 한다면, 거짓교사로서의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할것이다(고후11:13-15). 그들에게 기독교에서 요구하는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자기부인과 자기희생(마20:26-28,23:11-12)이 있는지 공동체나 교회는 꼭 공동체의 분별로 그 의지 뒤의 숨겨진 미궁한 곳이, 온전한 성령의 전인지 아니면 이미 짐승의 털로 포장되어 있거나 괴물이 되어있는지를 시간의 여유를 두고 꼼꼼히 살피고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고전2:10-16,3:10-17). 주님의 엄중한 경고와 성령님의 탄식이 있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점점 비인간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복음과 율법의 상관관계를 우리는 좀 더 명확히 하여 문제의식을 갖고 설교를 들여다보고 개인과 교회별로 이를 대입시켜보자. 그리고 더욱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말씀 안에서 우리를 사랑과 진리로 격려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따르기를 바란다(롬5:5,고전2:10-16,요일3:24,계2:29,3:22). 기독교의 어떠한 공동체나 교회, 개인들도 성령님을 도외시하면 어리석은 실패자요, 사악한 결과물을 초래할 수 밖에 없게 되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대천덕저서.'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중 성령론에서 인용,고전2:10-16,3:10-17,갈5:16-26).

우리가 진정 성화되기 위해서는 말씀 안에서 심플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며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유기적으로 연합된 진실된 한몸을 이루게 되길 소망한다(엡2:20-22). 그리고 율법의 최고한 법인 네 이웃을 사랑하고(약2:8) 화목, 화평케하며(고후5:18-20) 약자를 돌아보는 사랑의 실천까지 이루길 소망한다(약1:25,2:8). 이에 경건하여지고(약1:26-27) 주님의 이름으로 복된 소식을 증거하며 땅끝까지 예수님의 복되고 참 좋은 권능받은 증인의 역할(행1:8)을 잘 수행하는 교회나 공동체를 찾도록 기도하며 또 찾고 그곳에 참여해서 함께 동역해야 할 것이다. 또 이러한 일치를 감당해야 이 나라에 이기적이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가치들로 분열된 교단들도 말씀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고 이 세계에 사랑과 진리로 통치하시는 주님의 나라를 능력있게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에 우리나라는 복음이 전파될 초창기에 세계각처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신들의 목숨을 바치며 헌신한 순교의 피로 세운 연합되고 일치된 교회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세계 여러나라 개신교단의 집합소 같은 모습이 된 듯 하다. 우리는 진정 다시 머리되신 주님의 유기적 몸으로 연결되어 하나된 교회 (에베소서 2장 20-22"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의 모습을 찾고 구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자기를 부인하면서 순교자의 자세로(마20:26-28,막8:34-35) 성령님과 함께 동행해야 가능하다 믿는다(고후1:22,엡4:3-4). 철저한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없이 기업화하며 기형화된 대형 교회와 교단들을 향해, 선교목적이나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도 성화보다는 칭의에만 강조를 두며 설교나 교육하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은 유기커나 숨겨두는 목사나 신학교들에게, 사회정의와 실천은 가담하면서도 기독교를 이성의 한계내의 종교로 국한시켜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키고 성령의 존재를 안 믿거나 개인의 실존적 요청에 의한 소통의 영역으로 한정짓는 목사와 신학교들도 포함해서, 또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위해 갖은 포장으로 괴물화된 각양의 거짓교사들과 비인간화된 세상을 향해, 또 이 땅에 선교목적으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혼란과 분열을 주며 자기 밥그릇 싸움만 관심있게 치중하듯 하는 정치적 성향의 분열된 이 나라 여러 교단들의 신학교와 그 곳에서 학생들 앞에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자기희생없는 신학교수들을 향해, 말씀이 중심이 되어 성령이 인도하는 신앙의 양심에 따라(고전2:10-16) 담대히 그들을 거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의 선한 양심들이 많아 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사랑과 진리로 1, 2계명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말씀을 실천하며(롬13:8-10) 선포하며 세상에 감동을 주는 심플하고 날렵한 주님의 몸된 교회들이 더 많아지고 그 소망을 주의 종들이 이뤄 가도록 기도할 것이다. 그래야 비인간화되어 이기적인 괴물들로 들끓어 곧 터져버릴 것만 같은, 세상의 사회 약자들에게나 보일 이 헬조선에 진노한 하나님의 예정된 심판도 유기되고, 다시 새롭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계 위에(롬11:32) 이스라엘에게 까지도(롬11:13-27) 다시 생명력있게 선포되고 권능있게 역사 될 것이라고(고전4:20) 나는 믿는다.
                                                                                              20210617  나그네된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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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 성경의 복음과 율법 그리고 헬조선 박야곱 21.06.17 358
1690 이땅의 아픔을 품어온 예수원 은혜로만 21.06.07 407
1689 (강의 영상) 안식년과 희년에 땅을 쉬게 하는 이유와 그 의미 박창수 21.06.03 330
1688 “헨리 조지의 토지평등권 사상과 농지 문제” 강의 소감 박창수 21.06.01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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