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입”(사 58:14) - 희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8-07 12:11     조회 : 249    
“여호와의 입”(사 58:14)
- 희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이사야 58장의 주제는 한마디로 ‘희년 실천’이다. 그런데 이 본문은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4)로 마친다. 여기서 ‘여호와의 입’은 하나님을 사람에 비유하는 신인동형론적 표현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로서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왜냐하면 이 본문에서 화자이신 “여호와의 입”은 성부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구별되면서도 하나님이신 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곧 이사야 58장 본문에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이라고 말씀하시며 희년 실천을 명하신 분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자 하나님은 희년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왕으로 좌정하시고 온 세계를 통치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게 희년 정신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희년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여 희년 정신을 실천하면서 온 세계에 희년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이사야 56장부터 58장까지의 본문은 그 처음과 마지막이 ‘안식일 준수’를 공통 주제로 한 수미상관 구조의 큰 한 단락이다. 따라서 사 56:1의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는 말씀에 담긴 뜻의 핵심은 바로 사 58:6-7의 “내가 기뻐하는 금식”에 담긴 구체적인 실천인 것이다.

사 58:6-7,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는 삶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마디로 희년 실천이다. 왜 그런가?

안식년과 희년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희년에는 네 가지 정의가 실현되는데, 그 네 가지 정의는 바로 토지 정의, 주거 정의, 노동 정의, 대부 정의이다. 가난 때문에 땅을 팔아버린 가난한 사람은 희년에 그 땅을 되찾는데, 이것이 ‘토지 정의’이다. 또 가난 때문에 열두 지파의 촌락에 있는 집과 레위지파의 성읍에 있는 집을 팔아버린 가난한 사람은 희년에 그 집을 되찾는데, 이것이 ‘주거 정의’이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몸이 팔린 가난한 사람은 절대 종이 되거나 종처럼 엄하게 부림 받아서는 안 되고 희년에 자유를 되찾는데 이것이 ‘노동 정의’이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빚을 꾸어줄 때 절대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고, 도저히 갚지 못할 형편일 때는 안식년에 그 가난한 사람들이 진 모든 빚을 탕감해야 하는데, 이것이 ‘대부 정의’이다. 그런데 이사야 58장은 이 네 가지 희년 정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 본문의 배경에는 ‘부채 노예’(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에게 종으로 끌려간 빈민)의 문제가 있다. 부채 노예들을 두고 부릴 정도의 넓은 땅과 많은 돈을 가진 부유한 권력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돈벌이’(사 58:3, ‘헤페츠’, 개역개정 성경에서 ‘오락’으로 번역되었으나 문맥상 바로 다음에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가 이어지므로 ‘돈벌이’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를 위해, 모든 백성이 함께 그날 하루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안식하면서 회개해야 하는 금식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채 부채 노예들을 두고 또 그들을 가혹하게 부리면서 하나님께 왜 자신들의 금식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시냐고 불평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부채 노예 문제는 노동 불의, 토지 불의, 주거 불의, 대부 불의가 하나로 응축된 문제이다. 곧 부채 노예 문제에는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고 히브리 사람을 노예로 부릴 뿐만 아니라 모두가 안식해야 할 금식일에조차 노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노동 불의’가 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처럼 부채 노예가 되어 노동 착취를 당하게 된 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여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인 토지를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담보로 잡아 빚을 갚지 못하면 빼앗는 ‘토지 불의’가 있다.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빚을 갚을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부채 노예 문제에는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채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마저 담보로 잡고 빚을 갚지 못하면 빼앗을 뿐만 아니라 집 없이 유리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 방을 단 한 칸도 제공하지 않는 ‘주거 불의’가 있다. 그리고 부채 노예 문제에는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나 식량을 꾸어주면서 높은 이자를 받을 뿐만 아니라 부채 탕감을 해야 하는 안식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하지 않는 ‘대부 불의’가 있다.

사 58:4,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라는 말씀은, 권력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금식하는 날에조차 그날 하루 동안 쉬게 해 주어야 할 종들에게 힘든 일을 무리하게 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곧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라는 말씀은, 부채 노예를 부리는 권력자들이 금식일의 노동이 부당하다고 항변하는 히브리 노예들을 윽박지르며 폭언을 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라는 말씀은, 단지 폭언으로 끝내지 않고 히브리 노예들을 주먹으로 치면서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 히브리 노예들은 그 날이 민족의 금식일이라는 이유로 그들도 금식을 강요당한 채 굶주린 배를 안고 부유한 권력자들이 시키는 힘든 노동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 58: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모든 사람이 일을 쉬고 안식하며 진심으로 회개해야 할 금식일에, 돈벌이를 위해 히브리 종들에게 온갖 일을 시키고, 이를 위해 히브리 종들을 윽박지르며 악한 주먹으로 치면서 하는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 수 없고, 이런 금식일은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날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은 회개의 표현이다. 그러나 금식일에 돈벌이를 추구하고 히브리 종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기 위해 히브리 종들을 윽박지르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불의를 자행하면서, 겉으로만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고 뉘우치는 회개가 결코 될 수 없다.

또 이런 금식일은 “여호와께 열납될 날”도 될 수 없다. 여기서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란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날이라는 뜻인데, 이 ‘여호와께 열납될 날’(욤 라촌 라아도나이)은 이사야 61:2에서 희년을 뜻하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쉐나트-라촌 라아도나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두 구절은 ‘날’(욤)과 ‘해’(쉐나트)만 서로 다른 단어이지, 다른 단어들은 개역개정 성경에서 ‘여호와께 열납될’과 ‘여호와의 은혜의’로 달리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에서는 ‘라촌 라아도나이’로 똑같다. 곧 ‘여호와의 은혜의 해’란, ‘여호와께 열납될 해’와 같은 뜻으로서,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해를 의미하며, 바로 희년을 가리킨다.

레 25:9-10에서, 이 희년은 속죄일에 선포된다. 곧 ‘여호와께 열납될 해’는 ‘여호와께 열납될 날’에 선포되는 것이다. 만약 속죄일에 ‘여호와께 열납될 해’를 선포하지 않으면, 그 속죄일은 더 이상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 될 수 없다. 또한 속죄일을 포함하는 금식일에 ‘여호와께 열납될 해’를 선포하지 않으면, 그 금식일은 더 이상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 될 수 없다. 금식일이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 되려면 반드시 ‘여호와께 열납될 해’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희년 정신을 실천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반(反)희년의 악행을 일삼으면서 금식하는 날을 어찌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에 담긴 뜻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은, 희년을 실천하면서 자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금식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이 이어진다.

사 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는 것,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다. 하나님은 4개나 되는 표현들을 사용하시어, 부채 노예를 해방하라는 동일한 한 가지 뜻을 강조하신다. 그런데 여기에는 노동 정의와 토지 정의와 주거 정의와 대부 정의를 모두 실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곧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를 부리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부채 노예를 비롯한 모든 노예를 해방하는 ‘노동 정의’를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자립 기반인 기업 토지를 되돌려 주는 ‘토지 정의’가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부채 노예에서 해방되어 고향에 돌아와 자기 가문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다시 다른 사람의 머슴이나 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촌락 주택을 되돌려 주는 ‘주거 정의’도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부채 노예에서 해방되어 주인집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자기들의 집을 되찾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다른 사람의 집에 얹혀 머슴살이나 종살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받은 이자를 되돌려 주고 모든 부채를 탕감해 주라는 ‘대부 정의’도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빚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아 빼앗은 땅과 집을 되돌려 주고 종으로 끌고 간 사람을 되돌려 보내준다는 것은 바로 꾸어준 빚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탕감해 준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노동 정의, 토지 정의, 주거 정의, 대부 정의는 모두 안식년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희년에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바로 희년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사야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라는 말씀은, 먹을 양식과 살 집과 입을 옷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 의식주 문제를 도와주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핍절한 각각의 상황에 따라,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라고 아주 세심하게 하나하나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이 주리고 굶주리고 헐벗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우리도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돌보는 이런 정신이 바로 희년 정신이다. 왜냐하면 구약 희년법은, 가난 때문에 처음에는 땅을 팔고 그 다음에는 집을 팔고 그 다음에는 돈이나 양식을 꾸고 그 다음에는 히브리인들에게 몸이 팔리고 최후에는 부유한 이방인에게 몸이 팔리는 등 가난이 점점 심각해지는 각각의 단계에 따라 세심하게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돌보면서, 그 가난의 단계들에 따라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행동을 명하고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라는 말씀의 배경은, 빚을 갚지 못해 자신들의 땅과 집을 빼앗기고 그 자녀가 종으로 끌려간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까운 친족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에게 찾아와서, 자신들의 빼앗긴 땅과 집을 물러 달라고 부탁하고 종으로 끌려간 자녀를 속량해 달라고 요청할 때, 그 부탁과 요청을 들어주지 않기 위해 아예 만나지도 않으려고 그 가난한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어 버리는 부자들의 행태이다. 따라서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까운 친족인 부자들에게 근족(近族)의 의무인 땅 무르기와 집 무르기와 사람 속량을 실천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땅과 집과 자유를 되찾는 때는 바로 희년이므로, 가난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들이 빼앗긴 땅과 집과 자유를 부유한 근족의 무르기와 속량 덕분에 되찾게 된다면 그 때가 바로 희년과 다름없다. 따라서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말라”는 말씀은 부유한 근족의 무르기와 속량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년을 선포하라는 뜻과 같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6절에서는 부채 노예 상태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동 정의와 토지 정의와 주거 정의와 대부 정의를 실천하여 부채 노예를 비롯한 모든 히브리 종들을 해방하는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7절에서는 가난이 심각해지는 각각의 정도에 따라 그에 맞게 구체적으로 돕는 희년 정신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핍절한 각각의 상황에 따라, 주린 사람에게는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사람은 집에 들이며 헐벗은 사람은 입히는 등 세심하게 보살피며, 근족의 무르기와 속량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바로 희년 실천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럼 이 이사야 58장 본문에서 이와 같은 희년 실천을 명하신 분은 누구인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이 본문의 마지막은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4)로 마친다. 여기서 “여호와의 입”은 하나님을 사람에 비유하는 신인동형론적 표현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로서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왜냐하면 이 본문에서 “여호와의 입”은 “여호와”와 구별되면서도 하나님이신 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라는 말씀 가운데 ‘나 여호와’에서 ‘나’는 개역개정 성경이 히브리어 본문에 없는데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이 성구의 주절에 있는 주어와 동사는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이다. 히브리어 본문대로 번역하면 “네가 부를 때에는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라고 그가 말씀하시리라”인 것이다.

사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라는 말씀 역시 히브리어 본문은 3인칭 주어와 동사로 된 문장이므로,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높임말을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시리니”가 될 것이다.

이 말씀들에서 3인칭으로 표현된 ‘여호와’는 이 말씀들의 화자로서 ‘나’라는 1인칭으로 표현된 ‘여호와의 입’과 구별된다. 그런데 “내 성일”과 “여호와의 성일”이 같은 뜻으로 평행되어 나타나는 것(사 58:13)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여호와의 입’은 ‘여호와’로도 불리신다. 곧 여호와로도 불리시면서 여호와와 구별되는 ‘여호와의 입’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성자 하나님에게 주셨기 때문에(요 17:11,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 성자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성부 하나님과 공유하시면서, 성부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구별되는 ‘여호와의 입’으로 표기된 것이다. 여기서 성자 하나님의 은유인 ‘여호와의 입’은 구약 성경에서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여호와의 사자”(창 22:11-18 등)와 비슷한 표현이다. 성자 하나님을 ‘여호와의 사자’ 또는 ‘여호와의 입’으로 표현한 이유는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고 온전하게 전하는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사야 58장 본문에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이라고 말씀하시며 희년 실천을 명하신 분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자 하나님은 희년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왕으로 좌정하시고 온 세계를 통치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게 희년 정신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희년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여 희년 정신을 실천하면서 온 세계에 희년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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