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시 72편)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08-31 20:39     조회 : 174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시 72편)
- ‘땅 없는 근로 빈곤층’을 위한 ‘사법 정의’와 ‘토지 정의’와 ‘노동 정의’의 실현

시 72편에서 “왕”은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왕의 아들”은 솔로몬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왕의 아들”로 인식하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본받아 온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보좌하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사법 불의를 척결하고 사법부 개혁과 검찰 개혁과 전관예우 혁파를 시급히 실현하여 ‘사법 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통해 토지 사용의 대가인 지대(地代)를 기본소득으로 만민이 평등하게 향유하면서 토지평등권을 실현하는 ‘토지 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및 아르바이트 저임금 노동 관행을 혁파하고,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대가 전부를 받는 ‘노동 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법 정의’와 ‘토지 정의’와 ‘노동 정의’의 실현이 바로 우리 시대에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는 것이며 압박하는 자를 꺾는 것이다. 이 일을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이상의 내용을 시 72편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1. “왕” - 예수 그리스도

시 72편은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는데, ‘솔로몬의 시’로 번역된 히브리어 ‘리쉴로모’는 ‘솔로몬에게 속한’이라는 뜻도 있지만 ‘솔로몬을 위한’이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는 ‘솔로몬을 위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마지막 20절이 “다윗의 기도”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이 시는 다윗이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위해 지은 시인 것이다.

시 72: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여기서 시인이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시 72편의 주인공인 “왕”은 솔로몬이 아니라, 시편 전체의 서시(序詩)인 시 2편이 노래하는 왕(시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 시 72편은 왕에 대해,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8절)라고 노래하는데, 이는 스가랴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가운데 거의 똑같이 나오기 때문이다.

슥 9:9-10, “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그리고 이 시 72편은 왕에 대해,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11절)라고 노래하는데, 솔로몬 앞에 모든 왕이 부복하지 않았고 솔로몬을 모든 민족이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의 주인공인 “왕”은 솔로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2. “왕의 아들” - 솔로몬, 그리스도인들

이처럼 시 72편에서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럼 “왕의 아들”(1절)은 누구인가? 솔로몬이다. 왜냐하면 다윗 언약(삼하 7:8-16)에서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할 다윗의 씨 곧 솔로몬에 대해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 7:14)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바로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다윗 언약의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다윗 언약의 화자이신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삼하 7:6)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을 인도하신 분은 바로 ‘여호와의 사자’로 표현된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민 20:16,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사자)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삿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둘째, 다윗 언약의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신 이유는 다윗 언약에서 화자이신 하나님은 자신을 “나”로 표현하시고 동사도 1인칭을 사용하여 말씀하시다가, 중간에 갑자기 “여호와”를 주어로 하여 동사도 3인칭 남성 단수를 사용하여 말씀하시고(삼하 7:11하,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다시 하나님이 자신을 “나”로 표현하시고 동사도 1인칭을 사용하여 말씀을 마치시므로, 중간에 등장하는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고, 화자인 “나”는 성자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윗 언약에서 화자이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다. 곧 다윗 언약에 따라 다윗의 씨인 솔로몬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주신 하나님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처럼 솔로몬은 성자 하나님의 아들이고, 상기한 것처럼 성자 하나님은 “왕”이시므로, 다윗이 자신의 씨인 솔로몬을 “왕의 아들”로 표현한 것이다.

요컨대 시 72편에서 “왕”은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왕의 아들”은 솔로몬이다. 다윗은 이 시에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왕”이신 성자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하고 있는데, 그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왕의 아들”인 솔로몬이 성자 하나님의 통치를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신을 “왕의 아들”로 인식하고, “왕”이신 성자 하나님의 통치를 본받아 온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 그럼 시 72편에서 성자 하나님의 통치는 어떻게 묘사되는가?

3.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 관계 정의, 사법 정의, 평화

시 72:2-3, “2.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체데크)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미쉬파트)로 재판하리니 3.의(체다카)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샬롬)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성자 하나님의 통치는 바로 “공의 또는 의”(체데크 또는 체다카), “정의”(미쉬파트), “평강”(샬롬)이다. 여기서 “공의 또는 의”(체데크 또는 체다카)는 삼중 관계(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 자연과의 관계)에서의 정의 곧 ‘관계 정의’를 뜻하며, “정의”(미쉬파트)는 재판에서의 정의 곧 ‘사법 정의’를 뜻한다. 하나님, 이웃, 피조 자연과의 관계가 모두 정의롭고 그 최후의 보루인 재판이 정의로울 때 “평강”(샬롬)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왕”이신 성자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시 72:4,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이것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쉬파트(사법 정의)를 시행하시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지금 많은 판사들과 검사들과 변호사들이 더러운 이득을 위해 사법 불의를 자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반역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사법 불의를 하루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사법부 개혁(판사)과 검찰 개혁(검사)과 전관예우 혁파(변호사)를 시급히 실현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보좌하여,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어야 한다.

4. 구약 시대의 “가난한 백성”과 “압박하는 자”

그럼 구약 시대에 누가 가장 보편적인 “가난한 백성”이었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이었는가? 바로 “땅 없는 사람들”(The Landless)이었다. 그들은 땅을 빼앗기고 집을 빼앗기고 종국에는 자유까지 빼앗긴 채 남의 종으로 전락했다.

그럼 누가 “압박하는 자”였는가? 바로 가난한 백성으로부터 땅을 빼앗고 집을 빼앗고 자유까지 빼앗은 권력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예언자 이사야와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미 2:1-2, “1.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2.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5. 우리 시대의 ‘땅 없는 근로 빈곤층’과 불의한 권력자들(부동산 소유자들)

그럼 우리 시대에 누가 가장 보편적인 “가난한 백성”이며 “궁핍한 자의 자손”인가? 바로 ‘땅 없는 근로 빈곤층’(The Landless Working-Poor)이다. 땅 한 평 없이 주택 세입자로 살면서 폭등하는 전월세 가격 때문에 허리가 휘고 피눈물 흘리며 이삿짐을 싸서 달동네로 높이 더 높이 밀려가다가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아니면 도시의 지옥고(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머물며,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의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고 대를 이어 빈곤이 세습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가난한 백성”이며 “궁핍한 자의 자손”인 것이다.

그럼 누가 “압박하는 자”인가? 바로 ‘땅 없는 근로 빈곤층’을 양산해 온 체제를 비호하면서 가난한 백성과 그 자손들로부터 토지평등권을 영구히 박탈하고 오로지 자기들만의 불의한 사욕을 추구해 온 권력자들이다. 그리고 그 권력자들에게 선거 때마다 투표하며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그들에게 기생하여, ‘땅 없는 근로 빈곤층’이 억울하게 전월세 가격 폭등과 저임금 노동으로 죽어가든 말든, 오로지 자기 집값 오르기만을 갈망하고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부동산 보유세 인상 정책에는 ‘세금 폭탄’이라 떠들며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부동산 소유자들이다.

불의한 권력자들과 유착한 이 부동산 소유자들 가운데에는 건물주나 다주택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집 한 채 가진 자들도 상당수 있다. 이 일주택 소유자들은 “자동차나 집을 막론하고 모든 소유 자산에 대해 그 가격에 상응하여 비례적이거나 누진적인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조세 정의’(租稅 正義)를 무시한 채, 일주택자는 당연히 면세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집에 대한 보유세 부과를 거부하고, 그 불의한 면세 특혜를 요구하면서, 그것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표로 밀어준다.

그런데 그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야권의 윤석열, 홍준표, 오세훈 같은 이들은 물론이고, 여권의 이낙연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이재명, 추미애 같은 이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일주택자에게 면세를!” 외치고 있다. 그들의 차이는 다주택자에 대한 정책에서 갈라지는데, 야권은 다주택자에 대한 면세까지 주장하고 있는 데 반하여, 여권은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양자를 똑같이 취급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일주택자에 대한 면세 정책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자동차와 같은 다른 자산에는 세금을 부과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비싼 주택에는 면세를 주장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가? 만약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집을 한 채 씩 다 갖도록 해 준 후에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특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기 집을 갖지 않은 가구가 전체의 40%가 넘는 상황에서 일주택자들에 대한 면세 정책은 그들을 위한 명백한 특혜인 것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감세 정책과 일주택자에 대한 면세 특혜 때문에 집값은 나날이 폭등하게 되고, 그에 동반하여 전월세 가격도 폭등하게 된다. 그에 따라 집 있는 사람들과 집 없는 사람들 사이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다. 그 결과 세입자 서민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로 집을 사려는 위험한 도박을 하게 되는데, 주기적으로 닥치는 경제 불황(1997년 외환위기, 2007년 금융위기)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집값이 폭락할 경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거나 막대한 대출금을 갚아나가느라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House-Poor) 곧 ‘집 가진 빈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6. ‘땅 없는 근로 빈곤층’을 위해 해야 할 일

따라서 조세 정의 철학에 입각하여, 일주택이든 다주택이든 관계없이 모든 소유 부동산에 대해 보유세를 부과하고 강화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면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고, 그에 동반하여 전월세 가격도 하향 안정화된다. 자기 집값 오르기를 갈망하면서 집값이 오르는 게 정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동차를 오래 쓸수록 그 가격이 떨어지는 게 정상인 것처럼 집도 오래 쓸수록 그 가격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부과하여 부동산 가격을 하향 안정화시키는 게 정상이지, 지금처럼 면세나 감세 혜택을 받아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사회 병리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 임대인들이 세입자 서민에게 보유세를 전가시키지 못하도록 지난 2020년에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다시 개정하여 전월세인상률상한제와 자동계약갱신청구권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집주인 실거주 시 예외 조항 삭제, 신규 계약에도 적용, 자동계약갱신청구권 최소 5회 부여 등). 또 부동산 보유세 재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의한 부동산 이익을 누려온 권력자들과 다주택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탐욕스러운 반발을 양심과 정의에 입각한 여론으로 제압해야 한다. 노예제도를 폐지하려 할 때도 노예 소유자들은 강력하게 저항했으나, 개혁자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탐욕스러운 반발을 양심과 정의에 입각한 여론으로 제압했었다.

그리고 대도시의 일주택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부동산 보유세 재원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으며, 이미 세입자 서민으로 새 가정을 이루었거나 앞으로 이루게 될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자기 집값 오르기를 갈망하는 탐욕을 내려놓고 부동산 보유세 부과 및 강화 정책(부동산 가격의 하향 안정화 및 전월세 가격의 하향 안정화 효과, 기본소득 지급)에 협력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

이와 같이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통해 토지 사용의 대가인 지대(地代)를 기본소득으로 만민이 평등하게 향유하면서 토지평등권을 실현하는 ‘토지 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및 아르바이트 저임금 노동 관행을 혁파하고,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대가 전부를 받는 ‘노동 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컨대 ‘사법 정의’와 ‘토지 정의’와 ‘노동 정의’의 실현이 바로 우리 시대에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는 것이며 압박하는 자를 꺾는 것이다. 이 일을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이 온 세계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왕의 아들”로서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본받아 그 통치를 보좌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게시물 1,717건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읽음
예수원 방문에 대한 안내 예수원 21.08.30 8709
회원 가입할 때 자기 소개해 주세요. (16) 예수원 13.10.25 390459
기부금 영수증 예수원 14.01.13 386077
1717 (강의 영상) 희년 평화 원칙과 그 실천 방안 (1) - 반전(反戰) … 박창수 21.09.30 80
1716 영육 통합적인 출애굽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출 15장) 박창수 21.09.16 98
1715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갈 4:29) - … 박창수 21.09.10 121
1714 (강의 영상) 희년 정치 원칙과 그 실천 방안 박창수 21.09.09 103
171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 - 바… 박창수 21.09.06 113
1712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박창수 21.09.04 124
1711 (강의 영상) 희년 생태 및 희년 사회 원칙과 그 실천 방안 박창수 21.09.02 115
1710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시 72편) 박창수 21.08.31 175
1709 예수원 방문에 대한 안내 예수원 21.08.30 8709
1708 시 68편 - 몸의 부활 박창수 21.08.26 176
1707 (강의 영상) 희년 노동 원칙과 그 실천 방안 박창수 21.08.26 184
1706 “그의 이름은 야”, “전능하신 이”(시 68편) - 출애굽과 희년… 박창수 21.08.24 186
1705 죄를 속하시고 땅과 열방을 돌보시는 성자 하나님(시 65편) 박창수 21.08.20 210
1704 (강의 영상) 희년 주택 및 희년 대부 원칙과 그 실천 방안 박창수 21.08.19 231
1703 “그녀가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세우면”(사 53:10) - 성령과… 박창수 21.08.17 228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