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
  글쓴이 : 박창수 날짜 : 21-11-29 11:20     조회 : 183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요 1:14)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사자’로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심으로써 ‘자유’를 주셨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심으로써 ‘토지’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나셨다. 그럼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성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여 온 세계의 역사를 통치하고 계시는데, 그 통치는 개인을 죄에서 구원하는 통치일 뿐만 아니라 사회를 불의에서 구원하는 통치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해 개인 구원만 배타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온당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세계 통치에서 흔히 간과되거나 배척당하고 있는 사회 구원의 경우, 그 핵심은 애굽에서 압제를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날 온 세계에서 ‘토지’와 ‘자유’를 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회복시켜 주시는 ‘희년(禧年) 통치’이다.

대선을 앞두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어떤 관점에서 토론하고 투표해야 할까? 나는 이에 대해, 한국 사회를 불의에서 구원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위해 복무하는 관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그 정책이 한국 사회를 불의에서 구원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통치 곧 ‘희년 통치’에 순행하는지 아니면 역행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토론과 투표에 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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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은 한 구약 논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성자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라는 주장을 읽었다. 그 논지 중에서 구약에 나오는 모든 여호와의 사자를 성자 하나님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여호와의 사자가 천사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하는 본문들을 신중하게 그 맥락을 살펴 성자 하나님 또는 천사로 각각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 사사기 13장에서 장차 태어날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인가? 이 본문에서는 확실하게 ‘성자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삿 13:17-23, “17.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성자 하나님’이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삼손의 부친 마노아가 자기 부부에게 나타난 ‘그 사람’(삿 13:11)이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난 후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삿 13:22)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곧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곧 ‘성자 하나님’이신 것이다.

둘째, 마노아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라고 질문하자, 여호와의 사자는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라고 반문하는데,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과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대화와 같기 때문이다.

창 32:29-30,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여기서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라고 요청하자, ‘그 사람’이 반문한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라는 말은 마노아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한 말과 히브리어 본문에서도 똑같다. 그런데 야곱은 ‘그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마노아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야곱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곧 ‘성자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데 사사기 13장에서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사사기 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와 똑같은 분으로서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삿 2:1-4, “1.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삿 2:1)라고 말하기 때문에,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그럼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인가? 바로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보내심을 받아 ‘여호와의 사자’로서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고 장차 태어날 삼손에 대해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요 1:14)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사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심으로써 ‘자유’를 주셨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심으로써 ‘토지’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나셨다. 그럼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성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여 온 세계의 역사를 통치하고 계시는데, 그 통치는 개인을 죄에서 구원하는 통치일 뿐만 아니라 사회를 불의에서 구원하는 통치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해 개인 구원만 배타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온당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세계 통치에서 흔히 간과되거나 배척당하고 있는 사회 구원의 경우, 그 핵심은 애굽에서 압제를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날 온 세계에서 ‘토지’와 ‘자유’를 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회복시켜 주시는 ‘희년(禧年)’의 통치이다. 희년은 구약 역법의 제 50년인데, ‘토지’와 ‘자유’를 잃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들을 회복하는 해이므로, 오늘날 온 세계에서 ‘토지’와 ‘자유’를 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회복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는 간략하게 ‘희년’의 통치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보내신 존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역사 통치를 주목하고 기도와 실천으로 수종해야 한다. 개인을 죄에서 구원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사회를 불의에서 구원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어떤 관점에서 토론하고 투표해야 할까? 나는 이에 대해, 한국 사회를 불의에서 구원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위해 복무하는 관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그 정책이 한국 사회를 불의에서 구원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행하는지 아니면 역행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토론과 투표에 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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